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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인문공동체 '비평고원' 10년 맞아 기념비평집 펴내/ 정보의 바다에 쌓아올린 인문학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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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인문공동체 '비평고원' 10년 맞아 기념비평집 펴내/ 정보의 바다에 쌓아올린 인문학 성채

입력
2010.07.0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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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쿤데라와고진의 고원'이라는 이름의 인문학 카페가 개설됐다. 그해 12월 지금의 명칭으로 문패를 바꿔 단 이 카페에 글을 올린 이들은 대학원생, 식품회사직원, 약사 등 다양했다. 밀란 쿤데라와 가라타니 고진의 팬클럽으로 출발한 이 카페에 재야의 고수들이 문학, 철학, 영화 등 자신의 관심분야에 독특한 시각의 칼럼, 서평 등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내 인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방문자수 33만 2,000여명을 헤아리며 카페 개설 10년 만에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인문공동체로 자리잡은'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이 그곳이다.

오역 논쟁, 스크린쿼터 논쟁 등 치열한 논쟁의 장

'비평고원' 10년을 맞아 최근 발간된 기념 비평집 (도서출판 b 발행)에서는 지금까지 '비평고원'이 걸어온 길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무려 1,072페이지에 이르는 이 비평집에는 문학, 예술, 철학, 정신분석 등 '비평고원'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있다. 특히 무수한'Re(댓글을 표시하는 인터넷 기호)'가 달리며 비판과 재비판이 이어졌던 논쟁들이 백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에 관한 오역 논쟁(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과 의 주제인'복수'논쟁(2004년), 유태계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에 관한 논쟁(2006년) 등이 그 사례다. 중요한 인문학 이슈를 추적하려는 인문출판사들에게도 '비평고원'은 주요 관심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주승일(33) 그린비 동아시아 편집팀장은 "출판계에 입문했던 7년 전부터 중요한 인문 논쟁의 요점을 파악하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이곳을 꼭 들렀다"며 " 예비필자들을 검증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비평고원'의 주요필자인 문학평론가 조영일(37)씨와 전문번역자 이성민(43)씨에 의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프라인성 배제가 성공의 비결

방문자수 100만명을 헤아리는 블로그나 카페와 비교하면 회원수 1만3,000명, 하루 평균 500명이 찾는 '비평고원'의 외형은 소박하지만 온라인인문공동체의 성공사례로 꼽힌다.'비평고원'말고도 많은 온라인인문공동체들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몇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카페운영자 조영일씨는 '비평고원'의 성공 원동력으로 '오프라인성의 유지'를 꼽았다. 주요 회원들이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많아야 1년에 1,2차례다. 조씨는 "'비평고원'은 학교라기보다는 일종의 정거장과 같은 곳으로 회원들은 이 공간을 투자대상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며 "다른 온라인인문공동체의 실패는 온라인 공간을 오프라인 모임을 보조하는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필명 '로쟈'로 유명한 카페 회원 이현우(42ㆍ서울대 강사)씨는 "자연과학분야의 온라인공동체로서 '브릭(Bric)이 가장 활발하다면 인문분야에서는 '비평고원'이 가장 활기 넘치는 공간이라고 자평한다"며 "1,2명의 필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30~40명의 필자들이 꾸준히 열의를 보여준 것이 안팎의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집단지성의 공간으로 자리잡을까

'비평고원'은 학벌과 친분 등을 배제한 치열한 논쟁을 여러 차례 펼치며 폐쇄적인 학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활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비평고원'이 대안적 담론을 형성했느냐, 혹은 진정한 집단지성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엄존한다. 김수영(45) 문학과지성사 대표는"제도적으로 구성원들이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학교와 달리 담론의 개방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다만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데는 지식인들 사이의 협업도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제도권 지식인들에 대해 유연성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비평고원'이 지나온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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