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회장선임파동 이후 7개월 동안 '가시방석'위에 앉아있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마침내 물러난다. 6년간 국내 리딩 뱅크를 이끌었고, 그러나 자신이 직접 만든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놓고 두 차례나 고배를 마셨던 그에 대해 '이 정도면 명예로운 퇴장'이란 시각과 '비운의 CEO'란 평가가 엇갈린다.
강 행장은 5일 은행 임원들에게 "새 회장을 모시고 더 큰 발전을 이뤄달라"며 사실상의 고별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강 행장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에게 13일자로 퇴임하겠다는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행장의 원래 임기는 10월말. 하지만 새 지주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한편으론 다음달 금융감독원의 징계조치를 앞두고 은행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기퇴진 결정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강 행장은 곧 미국으로 떠나 석사과정을 밟았던 터프스대학 플레처스쿨에서 1년 정도 연수를 계획이다.
승승장구
2004년10월 김정태 전 행장의 후임으로 그가 임명됐을 때 시장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서울은행장 시절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흑자전환과 매각을 성공시킨 점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주로 외국계 은행 서울지점에서 경력을 쌓았던 만큼 리딩뱅크 CEO로서 충분한 자질검증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각에선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권에 팽배했던 '외국계 출신 프리미엄'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행장은 특유의 조용하지만 강한 리더십과, 폭넓은 대외관계를 바탕으로 국민은행을 대과 없이 이끌었다. 국민은행은 1위 수성에 성공했고, 결국 그는 2007년 연임에 성공했다.
흔들림
연임가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 행장은 비판과 도전에 직면했다. 2006년 외환은행 인수실패는 경쟁자 신한은행의 잇딴 M&A(조흥은행 신한카드) 성공과 대비됐고, 자산이나 수익성 면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비판은 결국 2008년 초대 KB지주회장 경쟁에서 실패로 이어졌다. 자신이 만든 자리(KB금융지주회장)를 외부(우리금융회장) 출신 황영기씨에게 내주는 수모를 당한 것. '강 행장의 방심이 낳은 결과'란 해석이 지배적이었지만, 통합 지주회장ㆍ은행장을 꿈꿨던 그로선 쓰라린 패배였다.
낙마
우리금융회장 재직시절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황영기 회장이 중도하차하자, 그는 지주회장 자리를 놓고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당국은 '서두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강 행장은 첫 번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속전속결전략을 취했고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내정됐다.
그러나 정부 뜻을 거스른 그는 '괘씸죄'를 샀고, 당국은 특별검사권까지 동원하며 그를 압박했다. 지난해 12월 강 행장은 결국 회장내정자 지위를 반납하면서 '회장직 불출마선언'까지 하게 됐다.
한 금융계 인사는 "강 행장의 퇴진은 그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심각한 관치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많은 점을 시사한다"며 "국내금융의 발전을 위해서나 은행의 안정을 위해서나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어윤대 회장내정자가 강 행장은 후임은 '내부인사임명'원칙을 밝힘에 따라, 국민은행은 곧바로 행장선임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차기 행장으론 ▦부행장 출신의 정연근 전 KB데이터시스템사장, 이달수 현 KB데이터시스템사장, 윤종규 김&장고문 ▦내부 현직인사인 최의기ㆍ민병덕ㆍ심형구 부행장과 최인규 지주부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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