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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다른 맛 '이끼' 짜릿한 긴장, 놀라운 반전, 빼어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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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다른 맛 '이끼' 짜릿한 긴장, 놀라운 반전, 빼어난 연기…

입력
2010.07.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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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태호씨의 '이끼'는 2009년 인터넷을 달군 인기 만화다. 인간과 선악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과 통찰 때문에 많은 마니아를 낳았다. 영화로 만들면 인지도에 있어 유리하기도 하지만 그 완성도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기 마련인 만화다. 요컨데 '이끼'는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원작이다.

충무로 최고 흥행술사 강우석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이끼'는 2시간 38분간 관객을 전율케 한다. 원작이 던진 숙명적인 압박을 이겨내고 원작과 다른 재미를 던져주는 뚝심 어린 연출에 놀랐다. '실미도'로 1,000만 영화 시대를 열었고, 흥행 전선에서 패전을 몰랐던 충무로 고수답다.

사소한 일로 소송을 벌이다 재산 날리고 이혼까지 해 불알 두 쪽만 남은 유해국(박해일)이 20년간 의절한 아버지 유목형(허준허)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서 이야기는 출발선에 선다. 아버지가 오래도록 칩거한 마을은 음산하고 주민들의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는 내가 시작과 끝"이라고 자부하는 이장 천용덕(정재영)도 의문투성이다.

유해국은 마을에 눌러앉아 아버지의 죽음과 유산 처분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려 한다. "개새끼 한 마리가 돌아다녀도 신경 쓰이는데…"라며 불편해 하는 주민들에게 해국은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해국이 그 이유를 찾아 헤맬 때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우리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마을의 역사와 아버지의 삶, 주민들의 과거를 캘수록 해국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해국과 철천지 원수인 검사 박민욱(유준상)이 엮이면서 서스펜스를 더한다.

훌륭한 콘텐츠가 늘 그렇듯 '이끼'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베일 속 한적한 마을을 통해 한국사회의 어둠을 포착하고,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행태를 들춰낸다. 범죄자의 갱생을 도모하기로 의기투합한 유목형과 천용덕의 대립은 종교적 의미까지 품는다. "가벼운 도둑은 겉을 훔치지만 진짜 악마는 마음을 훔친다" "니는 신이 되고 싶었나, 내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등의 대사는 곱씹을수록 맛이 우러난다.

의문부호가 극을 전진시키며 선악의 경계선 위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가는 영화다. 원작과 다른 결말은 모든 앞 장면들을 복기하게 만들 만한 빼어난 반전 효과를 지녔다. "범죄신고가 112인가 1588인가" 등 곳곳에 매장된 유머러스한 대사는 경직된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다들 이름 값 이상을 한다. 특히 덜 떨어진 마을주민 김덕천(유해진)의 발작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 한편의 영화다.

타이틀이 뜨기 전 20분은 대단히 함축적이고 박진감 넘친다.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다. "나는 충무로 파워맨에 앞서 감독"이라는 강 감독의 선언으로 들린다. 청소년관람불가, 14일 개봉.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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