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공사가 선정된 서울 강동구의 A재건축단지. 불과 두 달까지만 해도 유명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대형사가 주민에게 비공식적으로 제시한 '무상지분율'(소유 면적 대비 무상으로 챙기는 대지 지분의 비율)은 140%대였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D사가 170%대의 지분율을 조건으로 뛰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D사가 뛰어들자 대형 업체는 '브랜드 파워가 높아야 집값이 높아진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했다. 주민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세 불리를 느낀 한 업체는 중도 포기했고 다른 업체는 지분율을 높여 제시했다. 그러나 결국 주민들의 최종 선택은 D사였다.
서울 재건축 시장에 '브랜드 파워'보다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는 실용적 경향이 확산되면서 주요 건설업체의 마케팅 전략도 급변하고 있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서울 지역 재건축 시장의 80~90% 이상을 브랜드 파워가 강한 상위 10대 건설사가 수주했으나, 최근에는 50위권 안팎의 업체가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이달 초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 홍은6구역에선 시공능력 43위의 서희건설이 현대ㆍ기아차 계열의 현대엠코를 누르고 사업권을 따냈다. 서희건설은 경쟁사업체보다 저렴한 3.3㎡ 당 380만원의 공사비를 제시,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비 960억원 규모의 경기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인정프린스 재건축 단지도 조합원이 실속을 선택한 경우다. 벽산건설의 경우 발표 전날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됐는데도 불구, 가장 저렴한 공사비(3.3㎡당 365만원)와 이사비용 지원 등의 파격 조건을 인정받아 낙점을 받았다.
서울 둔촌주공5단지 수주전에서도 161%의 무상지분율을 제시한 현대산업개발이 현대건설과 SK건설을 꺾었다.
업계에서는 재건축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의 급속한 약화의 이유를 불확실한 부동산 경기에서 찾고 있다. 앞으로도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브랜드 파워가 강한 업체에게 맡기는 게 유리하지만, 침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챙기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논리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사업조건보다 대형 건설사 브랜드만 고집해온 조합들이 공사비나 무상지분율 등을 따져 실속을 챙기기 시작했다"며 "이에 따라 조합원들에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시공권이 결정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상황이 급변하자 대형 업체들의 재건축 수주전략도 바뀌고 있다. 조합원과의 대면 접촉을 강화하는 큰 방향은 여전하지만, 일단 객관적 수주조건을 후발 경쟁업체 수준까지는 맞춰 놓은 뒤 브랜드 파워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지금까지는 브랜드 파워가 주력 마케팅 요소라면 이제는 부차적 요소 정도로 약화된 셈이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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