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지 않던 1960~80년대에는 학사나 석사 출신 교수가 꽤 있었다. 2005년 가을학기를 끝으로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를 정년 퇴임한 양승춘 교수는 '서울대의 마지막 학사교수'로 불렸다. 그는 1965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학부를 졸업한 뒤 광고업계에 뛰어들었다가 3년 뒤인 68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OB맥주, 제일제당, 신세계백화점의 기업상징(CI)과 서울올림픽 휘장을 만드는 등 '한국 디자인사(史)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학사교수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만 수십 여명에 달한다.
■ 요즘 한국 사회에서 교수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박사학위는 기본이고, 이공계의 경우 교수 공개채용 기준을 '일정 편수 이상의 SCI(국제과학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을 게재한 박사'로 제한하는 대학도 많다. 연세대가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올해 2학기부터 공대 정교수로 임용키로 했다. 그는 인하대 전기공학과 학사 출신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석좌교수나 객원교수가 아니라, 전임교수로 부임하는 것은 연세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 CEO 출신 교수들은 이미 경영대, 경영대학원(MBA) 등에 많이 진출해 있다. 초빙교수, 겸임교수 등이 일반적이다. 산학협력이 강조되는 데다 실무 중심의 교과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학사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벤처투자와 삼성BP화학 사장을 지낸 동국대 경영대 이재환 교수(연세대 경영학 석사)는 지난해 두 학기 연속 '우수강의 교수'로 선정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배순훈(MIT대 기계공학 박사) 전 대우전자 회장, 이용경(UC버클리대 전자공학 박사) 전 KT 사장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 최근 우리 대학사회의 교수 임용에서 두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하나는 최고의 전문가를 뽑기 위해 임용절차가 더욱 엄격해지고 있는 점이다. 교수의 연구 능력이 대학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규 교수는 대부분 단기 계약으로 뽑고, 승진을 위한 업적평가를 갈수록 강화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산학협동, 직업교육 강화를 핑계로 기업인이나 관료 출신의 세일즈형 총장과 CEO 출신 교수를 늘리는 것이다. 사회적 수요에 부응해야 하고 사립대의 경우 경영성과를 무시하기도 어렵다는 논리가 제기된다. 대학의 기업화가 학사교수의 토양인 셈이니, 학벌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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