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대 164대 6. 지난 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세종시 수정안의 표결결과다. 청와대는 역사에 기록을 남기겠다며 끝까지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나 쓰라린 패배만 맛봤다. 더구나 이 숫자는 단순히 찬성 반대 무효의 크기만 말하지 않는다. 여기엔 이명박 정부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출생의 비밀'과 현재의 여대야소 국회 의석구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메시지가 잘 담겨있다. MB 정부는 박근혜가 등을 돌리는 순간 100석 안팎의 여소야대 정권으로 전락한다는 현실 말이다.
'105:164:6'이 MB정부 현주소
청와대가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큰 틀의 고민을 거듭하는 대통령의 구상과 결단을 돕기 위해 표결을 고집했다면 이해할 부분도 있다. 권력의 실상과 힘의 한계를 깨닫고 연대와 소통만이 권력의 안정적 운행을 보장한다는 것은 표결에 담긴 중요한 교훈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 결정에 대한 판단도 역사에 맡기자며 아쉬움을 표시했고, 친위세력들은 박근혜의 반대토론을 비판하기에 바빴다.
정치공학의 잣대로 보면, 짧게는 2020년 길게는 2030년까지 사업이 이어질 세종시 문제는 여권이 섣불리 건드릴 사안이 아니었다. 당의 동력을 100% 가동할 자신이 있고 충청권을 설득할 수단과 대안이 충분히 갖춰진 다음에도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일이었다. 충청권의 지지을 업지 않고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 차례 선거에서 확인된 이상, '2012 게임'과 세종시 변수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차기 대선의 구도와 쟁점을 고려하고 박근혜의 입장을 배려했다면, 청와대가 손을 내밀어 '담판과 밀약'을 모색하는 것이 상식적 수순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점수를 따는 듯하더니 돌연 백년대계와 국익을 들고나왔고 뒤치다꺼리를 맡길 총리에 정운찬을 등용하는 등 순서를 바꿨다. 사안의 정치적 맥락을 모르는 총리는 덩달아 약속과 신뢰를 정략으로 폄하하면서 세종시 원안에 붙어야 할 알파(자족도시 지원책)를 수정안으로 포장하는 데 올인했다. 뒤틀린 과정을 택한 '세종시 300일 분쟁'의 결과는 앞에서 본 대로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난해 가을 4대강 사업만으로도 한창 시끄러울 때 청와대가 돌연 세종시 카드를 꺼낸 배경은 무엇이며, 그토록 세종시에 집착한 여권의 '집단심리'와 편집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세종시에서 패퇴했으며 이제 4대강 전선마저 뒤엉키게 한 수순 잘못을 바로잡을 타개책은 과연 있을까.
답이 무엇이든, 분명한 사실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곳에서 힘을 소진하는 바람에 청와대의 정국관리 능력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레임덕이란 말을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지만 이미 정권의 조로화(早老化)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찰에서 고문 악습이 되살아나고, 총리실의 비선조직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불거졌는데도 책임은커녕 10일 이상 사실관계조차 뭉개고 있다.
더구나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국회 질의가 있던 날, 책임자가 질의 직전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총리실은 소재도 파악 못하고 허둥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조직에 의한 권력남용과 별개로 공직기강이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준 사례다.
정책 집행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공기업 선진화의 상징으로 추진해오던 성과연봉제를 전체 공공기관 임직원의 5%인 간부직에만 축소 적용키로 한 것은 대표적 케이스다. 지방선거 전 전교조 교사 대량 징계방침을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와 건설사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국토해양부가 표를 깎아먹은 주범으로 청와대의 질책을 받았다는 소문 탓일 게다. 우리은행 민영화 등 금융 과제는 오리무중이고 공기업 인사는 잡음으로 들끓는다.
국정 곳곳 구멍, 권력누수 가속화
레임덕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은 어김없이 이 경구를 입증했다. 임기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권력남용 및 비리 유혹이 커지고 친인척 관리는 허술해지며 권력투쟁이 첨예화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의 눈치 보기와 정책 물타기도 빠지지 않는다. 지금이 그런 지경은 아니라고 해도 둑에 구멍은 뚫렸다. 구멍의 크기와 깊이를 알고 제대로 보수해야 도둑을 막는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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