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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별이 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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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별이 뜰 때

입력
2010.07.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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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이 뜨는 풍경을 삼천 번은 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별이 무슨 말을 국수처럼 입에 물고 이 세상 뒤란으로 살금살금 걸어오는지를 말한 적이 없다

별이 뜨기 전에 저녁쌀을 안쳐놓고 상추 뜯으러 나간 누이에 대해 나는 쓴 일이 없다

상추 뜯어 소쿠리에 담아 돌아오는 누이의 발목에 벌레들의 울음이 거미줄처럼 감기는 것을 말한 일이 없다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며 따라오던 강아지가 옆집 강아지를 만나 어디론가 놀러 가버린 그 고요함을 말한 일이 없다

바삐 갈아 넘긴 머슴의 쟁기에 찢겨 아직도 아파하는 산그늘에 대해,

어서 가야 하는데, 노오란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벌레를 잡지 못해 가슴을 할딱이는 딱새가 제 부리로 가슴 털을 파고 있는 이른 저녁을 말한 일이 없다

곧 서성이던 풀밭들은 침묵할 것이고 나뭇잎들은 다소곳해질 것이다

부엌에는 접시들이 달그락거리며 입 닫은 딱새의 말을 대신 해줄 것이다

별이 뜨면 사방이 어두워져 그때 막내 별이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문간으로 나올 거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너무 오래 써 너덜너덜해진 천 원짜리 지폐 같은 반달이 느리게 느리게 남쪽 산 위로 돋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벌들과 딱정벌레들이 둥치에서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나무를 거머쥐고 있는 것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별이 뜨면 귀뚜라미가 찢긴 쌀 포대에서 쌀 쏟아지는 소리로 운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나는 한 마디만 더 붙이려고 한다

이것들이 다 별이 뜰 때, 별이 뜨면 생기는 일들이다

● 갈수록 시력이 나빠지는 우리가 이 도시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저녁 별은 고작해야 열 개가 넘지 않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시야로 떠오르는 별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니, 도시의 초저녁은 소음으로 떠들썩하겠지만 별들의 초저녁은 나날이 고요해집니다. 별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죽는 것일까요? 그 사실을 아는 데 대단한 천문학적 지식은 필요없지요. 누군가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면 그 별은 탄생하는 것. 그렇다면 아무도 그 별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될 때, 그 때 별은 죽는 거지요. 왜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여야만 하나? 그건 하나의 별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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