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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경찰/ (하) 인사 승진구조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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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경찰/ (하) 인사 승진구조의 덫

입력
2010.07.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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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차만 채우면 경위 승진… 기강해이 부추겨

납치 살해된 대구 여대생의 집에서 잠을 자고 술을 마시는 등 극도의 기강 해이를 보인 최모(48) 경위, 실적을 올리기 위해 피의자를 폭행한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 등 최근 경찰의 일그러진 행태 속에는 인사 승진구조의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한 채수창 전 서울강북서장의 하극상 사건도 복지부동(伏地不動)하거나 성과주의에 매달리는 인사 승진구조의 부작용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내용은 경찰 내 만연한 성과주의를 지적한 것이지만, 승진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심경이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었으리라는 해석이다.

충남지역 OO경찰서 형사과장 A(45) 경정은 B(50) 경위의 '배째라' 식 태도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며칠 전 발생한 절도사건 탐문수사라도 더 해보라고 했더니 "내가 그 지역은 훤히 아는데 더 수사해 봤자 나올 것도 없다"고 되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사기를 높이려고 근속승진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악용해 게으름을 피우는 경찰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2006년 경사까지 해당되던 근속승진제도를 경위로 확대하고 승진 소요기간도 단축했다. 순경, 경장, 경사는 각각 6, 7, 8년이 지나면 자동 승진한다. 경사는 상대평가를 적용, 60%만 승진을 시키지만 그 이하 계급은 근무성적 37.5점 이상이면 승진할 수 있어 탈락자가 4~5%에 불과하다. 승진 연차에만 열심히 근무하면 된다는 해이한 의식이 자리잡은 이유다.

승진을 포기한 자포자기 행태는 경위를 비롯한 하위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도 마찬가지다.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6.8%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3월 제주경찰청 C 총경이 대기업 간부 등과 함께 술을 마시다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포위'(경감 승진을 포기한 경위)보다 '경포총'(경무관 승진을 포기한 총경)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며 "채 전 강북서장 사건도 같은 맥락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승진을 하려는 경찰들은 승진제도 때문에 실적, 성과에만 매달리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강도살인범 검거는 70점, 살인은 50점, 조직폭력은 20점 등 점수를 정했다. 점수를 잘 받아 승진을 하려면 순찰 등 예방활동보다는 범인 검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D(44) 경사는 "2명이 한 조면 승진 욕심이 있는 젊은 후배에게 실적을 몰아주거나 지구대에서 범인을 잡았는데 경찰서 직원들이 점수를 가로채는 등 엉망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 평가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은 대민 업무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E(42) 경감은 "파출소에서 피해자 상담을 해주는 것도 주민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 '법무사나 법률구조공단에 알아보라'며 일을 떠미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찰 승진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드높다.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는 "우선 경위 근속승진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 근속승진 대상의 30% 정도를 시험이나 심사승진으로 돌려 긴장감을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한 "개량화된 성과주의를 개선하려면 상급자, 동료, 하급자 등의 다면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경강, 경정, 총경에만 적용하던 기존 다면평가제도를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폐지한다는데, 오히려 전 계급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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