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지음ㆍ김성호 옮김/창비 발행ㆍ340쪽ㆍ1만5,000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좌우파 모두에게 곤란한 과제를 던졌다. 대규모 구제금융안의 타당성 여부였는데, 곤경에 처한 부자(월스트리트)를 혈세로 살리는 안에 대해 미국 공화당은 반대, 민주당은 찬성 입장을 취했다.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생각하면 어딘지 묘하게 입장이 뒤바뀐 상황이었다.
유럽의 대표적 좌파 이론가 슬라예보 지젝(류블랴나대 철학 교수)이 지난해 쓴 는 바로 이 기묘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선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미국 민주당의 월스트리트 구제 찬성 입장은 자신들의 신념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를 걷어차면 실제 평범한 노동자들이 타격을 입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에게 좋은 것이 서민에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월스트리트가 골골하면 서민경제도 커나갈 수는 없는 게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금융과 실물경제를 대립시키면서 구제금융안을 "사회주의적 조치"라며 반발한 공화당의 입장은 모순적이면서 포퓰리즘적 주장이었다.
그런데 공화당의 이 같은 입장이 그저 위선적인 제스처가 아니었다는 게 지젝이 포착하는 대목이다. 지젝에 따르면 "붕괴의 책임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부차적이며 우연적인 일탈(금융기관의 타락 등)에 돌리는" 것은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서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비판가로서의 지젝의 면모가 드러난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좌파는 그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안고 있는 결함 때문이라는 것을 제대로 거론하지 못했다는 것. 지젝이 이 책에서 수행하는 작업이 바로 그 비판이다. 책은 그래서 금융위기 문제에서 자본주의를 자연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데올로기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세계금융위기와 자본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나,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반응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대안이 있는 건가? 책의 후반부가 다루는 문제가 이 질문인데, 지젝이 끄집어내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의 재검토다. 늘 그렇듯 좌파의 자본주의 비판은 날카로우나 대안은 혼란스럽고 모호하다. 하지만 "해답을 준다기보다 문제를 던지는, 도발하는" 책이라는 번역자 김성호 서울여대 영문학과 교수의 평가처럼, 지젝은 자본주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을 제공해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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