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벌써 그림책 뗐어요. 글자를 술술 읽는다니까요."
취학 전 자녀를 둔 엄마들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다. 거기에는 그림책은 글자를 읽는 데 서투를 때나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학년이 올라가도 그림책을 읽으면, 지적 발달이 처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엄마들도 많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림책을 읽느냐고 야단을 치기도 한다.
단언컨대, 이는 오해다. 그림책은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만 보는 게 아니다. 100세 노인에게도 훌륭한 읽을거리다. 글이 별로 없고 그림으로 구성된 책을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재미는 모두의 것이다. 그림 한 컷이 수 백 쪽에 걸쳐 쓰여진 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글이 하나도 없어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일찌감치 '활자감옥'에 가두고 싶어하는 어른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글자를 일찍 깨쳐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더 많은 책을 읽히려는 욕심은 자칫 아이들에게서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돌려주자. 그리고 함께보자. 아이의 그림책을 보다가 그림책에 빠진 어른들도 많다.
책에서 교훈이든 지식이든 뭔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요즘 나오는 어린이책에는 어떻게 읽고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제시하는 문제와 해설이 달린 것이 많다. 자유롭게 읽도록 놔두지 않고 방향까지 정해주는 '지나친' 친절은 수록된 내용이 교과서 무슨 단원과 연관이 있다는 표시도 빠뜨리지 않는다. 독서는 재미가 아니라 공부가 되었다.
그건 옳지 않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