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등 지음ㆍ박희병 등 옮김/돌베개 발행ㆍ각 권 191~212쪽ㆍ각 1만2,000원
고전소설이라고 하면 생경한 고어를 해독하느라 쩔쩔맸던 학창시절의 국어시간을 떠올리며 당최 관심 밖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읽을거리,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 "우리 것이니 읽어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독자들을 꾀기란 무리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현대인들에게 호소력 있는 고전소설을 발굴하고 현대적 감각의 번역을 통해 그 대중화를 꾀하는 '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 2차분 3권이 동시에 나왔다. 박희병(54) 서울대 국문과 교수, 정길수(41) 조선대 한문학과 교수가 함께 번역했으며 2007년에 나온 1차분 3권에 이어 3년 만이다.
이번 시리즈에는 조선시대 소설 29편이 실렸는데 은 속세와 떨어져 사는 방외인들과 무협인들의 이야기를, 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블랙유머가 넘치는 풍자소설을, 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염정소설을 묶었다. 박지원의 '호질'과 '양반전',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처럼 교과서적인 작품들도 포함됐지만 수록작 대부분은 고전문학 연구자들이나 접했을 법한 생소한 작품들이다.
"어? 정말 조선시대에 이런 작품들을 썼다는 말이야?"라고 놀랄 정도의 작품도 꽤 있다. 가령 임매(1711~1779)의 '환관의 아내'는 정숙주의 아래 억눌려 있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작품. 작가는 "첫날밤에 신랑이 옷을 벗기고 살을 맞대더니… 입술과 혀를 쪽쪽 빨아대더라구요"처럼 성애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만 혐오스럽지 않다. 성을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여주인공의 모습에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개방적 메시지가 투영돼있다.
박두세(1650~1733)의 1인칭 소설 '요로원야화기는 박지원의 소설만큼이나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다. 과거에 거듭 낙방하는 시골 양반이 주인공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서울 양반을 의뭉스럽게 풍자하면서 사색당파의 폐해, 벌열가문의 부정입시와 관직독점 등 조선 후기의 세태를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은 서울 양반과 시로 자웅을 겨루는데 김시습의 희작시(戱作詩)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말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뭐니뭐니 해도 압권은 역시 애정소설이다. 우리 소설사상 처음으로 3각 관계를 다룬 권필(1569~1612)의 '주생전'은 시기심과 애틋함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살린다. 환상적 기법으로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다루며 '삶이란 기쁨과 슬픔의 엇갈림'이라는 의미를 곱씹게 하는 김시습(1435~1493)의 '이생규장전'도 맛깔스러운 현대어로 감상할 수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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