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은 그야말로 '국가의 달'이었다. "대한민국"의 함성이 밤낮으로 이어진 월드컵을 비롯해, 천안함 사건 조사를 둘러싼 공방, 그리고 한국전쟁 개전 60년을 기념한 대대적인 6ㆍ25 기념식까지, 국가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다. 세계화와 다문화, 탈민족과 국가 해체가 현실의 의제로 떠오른 시대에도 이 땅에선 여전히 국가가 부동의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한 시간이었다.
특히 온 나라를 뒤흔든 월드컵은'국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저 축구경기일 뿐인데도 수백 만 인파가 밤잠을 설치고 장대비를 맞으며 대한민국을 외쳤고, 선수들은'원정'에 나선 '전사'로 불렸다. 목표인 16강에 오르자 선수들에게 포상금은 물론 병역면제 혜택을 주자는 주장도 나왔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니 앞으로의 승리를 위해서도 보상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축구 잘하는 것과 국가 위상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는 나로선, 수백만이 모이는 응원도 병역을 면제하자는 주장도 다 이해가 안 간다. 축구는 축구일 뿐 전쟁이 아니라는 것, 경기에서 이긴다고 그 나라를 살기 좋은 국가로 생각할 만큼 세계인이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굳이 되짚어야 할까? 더구나 병역이 그처럼 청춘의 발목을 붙잡는 질곡이라면 달리 내세울 게 없어 군대에 가야 하는 다른 청춘들은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참여연대가 유엔에 정부 보고서와 다른 의견서를 제출하자 총리는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일갈했고, 정부와 보수단체는 국익을 해치고 적을 이롭게 한 이적행위라고 공격했다. 미국 유학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것이 미국의 힘이다. 나 또한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자국 대통령을 그토록 신랄히 비판할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런데 왜 누구에겐 자유가 힘이고 누구에겐 자유가 이적일까? 국익이란 과연 누가 생각하는, 누구를 위한 이익일까?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국가는 실체이되 추상적인 실체다. 그 속에는 정부도 참여연대도 보수단체도 모두 포함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추상의 국가는 저마다 다르다. 허나 '짐이 국가다'라고 선언했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아닌 한, 어느 누구도 국가를 자임할 수는 없다. 물론 국민이 뽑은 정부의 대표성이 남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부의 정책을 국민이 늘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는 비판과 견제를 허용하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
비판하는 국민에게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묻는 것은 무지이거나 독선이다. 정부와 뜻을 함께해야 국민이고 다르면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곧 국가라고 믿는 절대군주의 사고방식이다. 수십 개국이 단일 헌법 아래 모인 유럽연합이 존재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국경을 넘어 공존하는 마당에, 이런 전근대적 사고방식은 국가의 외연을 축소하고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같은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나눠져서 겪은 지난 시절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차이를 강조해 더 작은 국가를 만들기보다, 민족도 국경도 더 넓어질 수 있다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상상력이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