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발행ㆍ288쪽ㆍ1만원
소설가 정미경(50ㆍ사진)씨의 세 번째 장편이다. 정씨가 다양한 인간 부류의 욕망을 세밀하게 파헤쳐 호평받은 단편집 (2008) 이후 2년, 장편으로는 (2005) 이후 5년 만에 낸 소설이다.
사하라 사막을 품고 있는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줄거리 상으로는 동양의 유물인 쥐 머리 모양의 청동상을 놓고 벌어지는 쟁탈전으로 요약된다. 작가는 지난해 프랑스와 중국 간의 문화재 분쟁으로 번지며 화제를 낳았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유품에서 이 청동상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쟁탈전의 주역은 사막 여행 안내인이자 유물 암거래상인 한국인 승, 프랑스인 패션디자이너 로랑, 현지의 닳고닳은 유물 거래상 무스타파 등 세 사람이다. 청동상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은 승.
그는 자신에게 거액의 사기를 치고 자기 아내까지 데리고 도망쳐버린 옛 친구 K를 뒤쫓아 이곳 사막의 땅에 왔다. 승은 평소 알고 지내던 무스타파에게 청동상을 맡기지만, 무스타파는 이를 몰래 광적인 유물 수집가인 로랑에게 팔아넘긴다. 하지만 로랑 또한 청동상을 온전히 간수하지 못한다.
로랑은 모로코의 별장을 은밀하게 사들인 고대 유물로 채워나간다. 청동상은 그에게 별장의 아름다움을 완성해줄 보석 같은 물건이다. 하지만 로랑과 친해진 소년 바바의 눈에는 청동상은 추한 모양의 물건일 뿐이다. 바바의 의심에 로랑은 답한다.
"커다란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선, 추함도 필요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구나."(159쪽) 아름다움이 욕망을 낳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아름다움을 낳는다는, 도착된 욕망의 고백이다. 청동상을 손에 넣고 로랑은 "이제 더이상 어떤 것도 원하게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독자는 그의 갈망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죽음뿐임을 안다.
이 소설은 결국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아름다움을 좇는 로랑의 욕망이 그 한 축이라면, 승의 내면을 장악한 K에 대한 복수심은 또다른 축이다. 그는 사막까지 샅샅이 뒤져 K를 붙잡으려 여행 안내인이 됐고, 그 복수심을 지탱해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유물 암거래에 나선다. 그 맹목적인 분노는 그러나 스스로의 삶뿐 아니라 외동딸 보라의 삶까지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작가 정씨가 그린 사막엔 추호의 낭만도 없다. 입버릇처럼 '인샬라'('신이 원한다면'이란 뜻의 아랍어)를 외치며 끊임없이 '자신의 갈망을 신의 갈망으로 바꾸어놓는'(224쪽) 욕망의 화신들이 득시글대는 가없는 땅일 뿐. 사막의 모래알처럼, 승과 로랑의 욕망은 덧없이 스러진다. 이 탐욕과 협잡의 모래땅에서 별처럼 빛나던 보라와 바바의 순수한 사랑 역시 같은 운명을 겪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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