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김정일이 정식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1974년 비공개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였다. 이때부터 '김일성 수령과 당 중앙을 받들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남한의 정보당국조차 처음엔 의미를 몰랐던 '당 중앙'이 김정일의 호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한참 뒤였다. 김정일은 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사상담당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 등 요직을 차지해 당의 인사권, 감찰권, 사상사업권을 장악했다. 사실상 김일성-김정일의 공동정권 시대가 된 것이다.
■ '당 중앙'이라는 표현이 노동신문 6월 30일자에 재등장했다. 9월 초로 예고된 당 대표자 대회를 잘 준비하자는 취지의 사설에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며 당 중앙의 두리에 단결하자'고 한 대목이다. '당 중앙위 사수' 표현도 4월 14일 '김일성 생일 98돌 기념 보고대회'서 16년 만에 재등장한 뒤 자주 쓰이고 있지만, '당 중앙'이란 표현은 이 사설이 처음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사라졌던 '당 중앙위를 사수하자'는 구호는 1996년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로 바뀌었다.
■ 당 중앙위 사수와 당 중앙이란 표현의 재등장이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3대 세습 후계체제 구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9월 상순의 당 대표자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뒤 아버지처럼 '당 중앙'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서는 당 대표자대회의 개최목적을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라고 밝혀 당 기구의 부활을 예고했다. 얼마 전 최고인민회의가 최영림 내각총리를 임명하면서 당 중앙위 '정치국 제의'에 따랐다고 한 것도 같은 흐름으로 이해된다.
■ 국방위를 앞세운 선군정치 체제 하에서 존재감이 미약했던 노동당의 위상이 되살아 나는 것은 북한의 정책결정 구조가 당 중심으로 회귀하는 신호라는 분석도 있다. 당의 정치국이 결정하고 비서국이 집행하는 구도가 회복되면 김정일 절대권력에 일정한 제동이 걸리게 되고 이는 바람직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수령체제가 김정일의 후계구도 속에 더욱 강화됐던 점에 비춰 속단은 어렵다. 하지만 경직된 정책결정 구조가 달라지면 전향적인 정책변화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 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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