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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3> 여행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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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3> 여행은 이렇게

입력
2010.07.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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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봉담읍 아파트단지의 한 상업건물에 있는 카페의 문에는 이런 글이 씌어져 있다. '수입의 일부를 네팔, 페루 등의 아이들을 돕는데 사용합니다.'

5월 문을 연 이 카페는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와 설탕을 조달하고 수입의 일부로 외국 아이들을 도우며 환경 보호를 위해 종이 컵을 쓰지 않는다. 카페 안쪽으로는 철학, 사회학, 문학 등의 도서 5,000여권을 갖춘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주민들이 커피도 마시고 편하게 책도 읽을 수 있다.

이 카페는 바로 옆에 있는 교회가 주민들의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인데 교회 목사의 부인 임영신(40)씨의 생각이 일부 반영돼 있다. 임씨는 7년 전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려 한 2003년 그는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그곳에 들어갔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절박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전쟁이 무고한 이라크 양민을 해칠 수 있다며 인간방패가 되기로 하고 그 위험한 곳을 일부러 찾아 들어갔던 것이다. 전쟁을 막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는 이후 티베트,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의 아체 등 분쟁지역을 주로 다니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행자들이 경계를 넘어 힘을 보태면 더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급증하는 해외여행자

물론 실업과 빈곤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시간적으로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해외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다 이번 여름에는 해외여행자가 매우 많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욕구 자체를 막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임영신씨는 그래서 이왕 여행을 할 것이라면 의미를 찾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 한다. 그는 한국관광공사가 7월 시작하는 공정여행 캠페인을 자문하고 평화네트워크 이매진피스 등이 개최하는 여행인문학 강좌에서 도보여행가 김남희씨,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씨 등과 함께 강의를 한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평화운동가라고도, 공정여행자라고도 부른다.

한국의 출국자는 2007년에 이미 1,300만명을 넘어섰다. 해외여행자유화 기간 등을 감안하면 일본보다 2배나 빠른 속도다. 임영신씨는 "사람과 문화를 만나고 세상을 성찰하는 여행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몇 가지 경험이 깔려 있다. 2003년 이라크, 요르단 등에 머물 당시 그는 이탈리아에서 온 모델, 일본에서 온 대학생, 미국에서 온 베트남전 참전 할아버지 등이 자신의 전공, 특기, 적성 등을 살려 여행 중 봉사활동을 하거나 현지인들과 끈끈한 유대를 갖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임씨는 여행은 저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반면 한국인 여행자에게서는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다. 2006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국제반전평화전략회의에 참가한 뒤 강연 초청을 받아 독일로 가던 도중 잠깐 프랑스 파리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인 민박집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유궁전 등 알려진 곳을 찾고 쇼핑에 매달렸다. 그가 파리의 대학가를 찾아가 현지 젊은이들의 모습을 한번 보거나, 파리에 있는 다른 민족의 주거지를 방문해 그들의 문화를 접해보라고 권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젊은이는 많지 않았다. 2007년에는 제천간디학교 학생들과 아시아평화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필리핀을 여행했는데 방문을 거절당하는 등 난감한 일이 많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술 주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일이 많아 한국인에 대한 평판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그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임영신씨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여행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속한 이매진피스는 여행 경험과 정보 등을 나누는 공정여행축제를 열고 관련 책도 냈다.

사람과 문화를 만나는 여행

그가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그곳에서 쓴 돈이 현지 주민의 삶에 보탬이 되며 그곳의 자연을 지켜주는 그런 여행이다. 이를 흔히 공정여행 혹은 책임여행이라고 부른다.

공정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를 여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여행하느냐다.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감수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임영신씨는 "운전을 하고 숙소를 청소하며 음식을 차려주고 가이드를 하는 등 여행 과정의 90% 이상이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며 "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관계이고 만남"이라고 강조한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체험하며 생태와 환경을 존중하는 여행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동참할 수 있는데 가령 1회 용품을 적게 사용하고 물을 낭비하지 않으며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있는지 등을 호텔이나 여행사에 물어보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물건 값을 너무 많이 깎지 않는 것 등이다.

공정여행을 한다고 비용이 꼭 싼 것은 아니다. 가령 네팔의 쓰리시스터스트레킹여행사를 이용하면 남성가이드를 고용할 때에 비해 하루 5,000원을 더 주고 여성가이드를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렇게 번 돈으로 가난한 네팔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고 여성들을 가이드로 양성하며 포터에게도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니 여행자가 그 돈을 꼭 아깝게만 여길 것은 아니다. 포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임영신씨는 네팔 포터들이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고 특히 안타까워했다. 포터들이 힘들게 짐을 지고 산에 올라 벤치와 테이블을 설치하고 파라솔을 편 뒤 가스를 틀어 차를 끓여주자 서양의 여행자들이 마시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포터야 짐을 나르고 그 대가를 받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터들은 방한복, 방한화도 없이 50㎏ 안팎의 짐을 나르고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롯지의 식당 바닥 등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저지대 출신 포터는 고산증에 시달리고 동상에도 잘 걸리지만 긴급한 의료지원은 거의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 공정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해외여행에서 나왔다. 공정여행전문여행사도 문을 열었고 온라인 상에는 공정여행카페도 생겼다. 하지만 공정여행이 꼭 해외여행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해외에 나가고도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여행을 하는 게 안타까워 해외여행에 초점이 맞춰진 측면이 있다. 임영신씨는 "최근에는 대구, 대전 등지에서 지역의 공정여행을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임영신씨와 이매진피스가 주안점을 두는 사업은 '희망의 지도' 만들기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키워드에 따라 해외여행을 한 뒤 그 경험과 그 과정에서 얻은 느낌을 정리하고 책으로도 내는 것인데 지금까지 여섯 명의 젊은이가 이 계획에 따라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임씨와 함께 필리핀을 여행한 제천간디학교 출신 학생은 이 계획에 따라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각국의 스무살 젊은이 15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꿈과 고민을 들었다. 그의 여행 키워드는 스무살이었다. 여행을 마친 뒤 그는 스웨덴의 사회적기업가양성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는데 추천서는 임씨가 써주었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때

물론 우리의 휴가문화를 감안하면 모든 사람이 다 이런 방식으로 여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임영신씨 자신도 잘 안다. 그렇지만 여행이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제 좀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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