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남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며 살아간다. 의식적인 주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의식적인 언설에서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달포 전에 검거된 초등학교 여학생 납치 성폭행범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내 안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그런 '괴물'도 자기가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과 한계를 자각하는 힘
따지고 보면, 어떤 종류든 내면에 욕망의 괴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좋은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하느냐에 따라 인격의 차이가 결정된다.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야말로 삶의 달인이라 할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뒤, 주장 박지성 선수가 "나의 월드컵이 끝났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후회도 된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서 은퇴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며 다음 대회에는 누군가가 출전할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팬들은 "무슨 소리냐? 은퇴하지 마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그의 말대로 국가대표팀은 (팬들의 투표로 뽑는) 올스타 팀이 아니며 팬들이 원한다 해도 실력이 안 되면 뛸 수 없다.
1981년생인 박지성은 4년 후 브라질 월드컵 때면 33세가 된다. 축구선수로서는 할아버지다. 경력과 인품,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따져볼 때 그만한 선수가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팬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박지성에 대해서는 박지성이 가장 잘 안다.
박지성이 그때도 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박지성의 월드컵이 끝났다는 것은 누군가의 월드컵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프로골퍼 박세리의 메이저대회 우승을 보며 골프채를 잡았던 박세리 키즈들이 많듯이, 박지성의 골 세리머니를 보며 자라고 있는 박지성 키즈들은 많다. 박지성 키즈들이 박세리 키즈들처럼 맹활약할 날이 머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놀라울 만큼 발전해 가고 있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하버드대 생들이 대학 건물을 점거했을 때, 네이턴 퓨지 총장은 교직원들과의 격론 끝에 경찰을 불러 점거사태를 해결했다. 그리고 임기가 남았는데도 이사회에 사표를 내고, 경찰을 불러들이는 것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법대학장 바크 교수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이때 그가 남긴 한마디가"나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유명한 말이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아는 사람의 자진 사퇴로 하버드대는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품과 폭이 크고 넓은 사회일수록 특정인의 진퇴로 성패가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 정치판으로 눈을 돌려보면, 박지성이나 퓨지 총장처럼 자신의 시대와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에게는 정치 외의 다른 생업도 별로 없다. 그런데, 6ㆍ2선거를 계기로 무엇인가 정치판에 전과 다른 기운이 돌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앞당겨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방선거를 통해 부각된 차세대 인물도 있고, 여든 야든 앞으로 전당대회를 통해서 정치적 위상과 힘이 커질 인사들도 많다.
우리 정치판도 좀 달라지길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경우 전당대회 출마자들 대부분이 그저 올망졸망해 보이고 더러는 병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갈지는 알 수 없다. 여와 야를 포함해서 국민들이 물 주어 기르는 콩나물시루 속에서 지금 어떤 콩나물 콩이 잘 자라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 축구가 창의력 있는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듯이 대한민국 정치에도 이제 창의성과 상상력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뭔지 몰라도 낡은 틀 속에 매여 있던 정치판의 변화 조짐을 읽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변화의 조짐이나 세대교체의 기운이 이데올로기적 구속과 강고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새로운 의식이 필요하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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