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은 우물을 함께 사용하던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아홉 살 어린이는 열흘 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혼자 겪으면서도 부모에게 혼날까 봐 말도 못했다. 사춘기에 이르러 그 끔찍한 상처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타인과 자신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증가하고 작은 자극에도 공격성을 보여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결혼을 했지만 부부관계를 거부하면서 이혼하게 되었다.
법 앞에 두 번 우는 현실
이러한 불행의 원흉을 고소하려 했지만, 당시 성폭력범죄는 친고죄로 분류되어 고소기간은 6개월 이내였다. 법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된 피해자는 스스로 가해자를 처벌하기로 마음먹고, 30세가 되던 1991년 결국 그 남자를 찾아가 살해하고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김부남 사건은 아동 성폭력이 부른 우리나라 최초의 살인사건이다. 이듬해에는 공무원으로 표창까지 받은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딸과 그 딸의 내밀한 공포와 분노를 알게 된 남자 친구에게 살해되었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로 성적 행위를 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행위이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심신의 상처를 남기고 그 후유증이 평생 간다.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성인의 80%는 현실과 분리되는 느낌과 현실 감각의 상실을 경험하고, 30%는 불안장애 강박장애 섭식장애 성생활장애 등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불행을 겪게 된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 사건은 바로 선행연구의 결과와 일치한다.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성폭력 피해 아동은 법 앞에서 두 번 울어야 한다. 유치원에서 성폭력을 당했던 네 살 여아는 경찰관 앞에서 세 번이나 진술해야 했다. 처음 녹화된 것이 경찰관의 조작 실수로 지워졌고, 그 다음엔 법정 진술을 도운 상담가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반복된 진술 요구는 피해아동의 상처를 더 깊고 크게 만들 뿐, 억지로 반복된 진술 내용은 오히려 불명확해진다.
조두순 사건 직후에도 검찰은 온몸이 멍 투성이에 만신창이가 된 나영이에게 다섯 차례나 똑같은 진술을 요구했다. 환자 상태를 감안해 지나친 요구를 막아주는 의사도 곁에 없었다. 김수철 사건의 피해 아동도 신속한 의료 진단을 받지 못하고 경찰 수사를 위해 따라다녀야 했고, 놀라 당황한 부모는 자녀의 권리를 옹호할 수 없었다.
최근 아동 성범죄에 강도 높은 처벌을 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도 아동 성폭력사건은 되레 증가하여 하루 평균 3.3건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해 최선의 이익과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는 효과적 개입이 필요하다.
'너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신속한 응급의료 조치, '너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라는 인지행동 치료와 함께 손상된 자아 존중감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무서운 상황에서도 탈출할 수 있었던 나영이의 판단력과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자칫 '네가 제대로 처신했더라면' 하고 비난할 수 있는 부모를 누구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킴이 엄마와 아빠로 변신하도록 돕는 부모 상담, 사례 관리를 통한 가족의 적응력과 응집력 강화, 아동 전문가에 의한 법률적 지원과 권리구제 절차 등 피해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아동 성폭력 예방대책과 함께 피해 아동이 가장 먼저 찾는 병원 의료진과 경찰에 대한 교육도 시급하다. 이로써 또 다른 김부남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29일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 범죄자의 약물치료 법률과 아동 성범죄자 신상 정보의 인터넷 열람을 가능케 한 아동 청소년 성보호 관련 개정법률이 실속 없는 땜질식 처방이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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