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 7ㆍ14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 중진 후보가 기자들을 만났다. 기자들이 후보 난립에 대해 물었다. 이 중진 후보는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최소비용이 3억원, 평균 잡아도 5억원쯤 써야 한다"며 "지금은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두고 봐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변수는 차치하고 돈 때문에라도 실제 출마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의 중진 의원 몇 명이 최근 유력한 원외 중진과 함께 저녁 식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이 원외 중진에게 8월 말 있을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이 원외 중진의 답변은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였다고 한다. 출마를 권유했던 의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당내 선거인 전당대회가 '돈 먹는 선거'라는 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유전(有錢) 당선, 무전 (無錢) 낙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대 출마에 돈이 많이 든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돈 쓰는 선거운동은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경고하는 것이나 민주당 원혜영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이 나서서 '깨끗한 당내 선거 추진 모임'을 만든 것은 모두 전대 비용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 여의도에는 식당의 방을 예약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있다. 전대 출마자들이 의원 등을 만나 밥을 사느라 예약이 꽉 찼다는 것이다.
전대가 후진적 고비용 구조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조직 선거'라는 당내 선거의 특성상 우선 조직관리 비용이 엄청나다. 정치권에서 계산하는 방식은 이렇다. 전국 243개 지역구마다 조직관리 책임자를 두고 이들에게 활동비조로 100만원씩만 내려 보내도 2억4,000여만원에 이른다. 한 전대 출마자는 "100만원은 기본이고 많게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전 지역구에 다 주지 않는다 해도 2억~3억원은 훌쩍 넘는다.
이 뿐 아니라 당에 내는 기탁금(한나라당 8,000만원, 민주당 5,000만~1억2,000만원)과 홍보물 제작비, 여론조사비, 캠프 운영비 등에 들어가는 돈도 상당하다. 특히 의원이나 대의원들을 만나며 식사하는데 드는 돈 등까지 포함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전당대회 당일 대의원들을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는 버스 대여비와 식사비도 만만치 않다는 말도 있다. 전대 비용이 많으면 10억원이 훌쩍 넘는다는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2006년 한나라당 전대에 출마했던 한 중진 의원은 "당시 2억원 정도 썼는데 알고 보니 가장 적게 썼더라"며 "지방에 내려갔을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오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타박을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민주당 전대에 출마했던 한 재선 의원도 "당시 2억원 정도 썼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돈 없는 사람이 왜 나왔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과거 당 대표 경선 자금을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으로 받아 사법처리 된 사례도 있다.
전대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 중 하나로 특히 '규제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다. 대선, 총선 등에서는 선거비용 제한액이 공직선거법에 규정돼 있지만 당내 선거인 전당대회에는 비용 제한이 없다. 불법만 아니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 정당법에 금품이나 향응 제공을 처벌하는 조항이 있지만 당 내부 고발 등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단속 자체가 어렵다. 때문에 "아직까지 유독 그대로인 당내 선거 구조를 하루빨리 개선해 돈 안 드는 전당대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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