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 좇느라 순찰 등 기본업무 소홀"vs."일 열심히 하게 동기유발"
29일 오후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만난 A경사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는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쉴 틈이 없어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실적, 성과에 우리가 얼마나 몸과 마음이 피폐해가고 있는지 위에서는 모를 것이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2시간 넘게 직접 겪고 있는 성과주의의 문제점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기본 업무 소홀'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파출소의 기본 업무는 무엇보다 범죄 예방과 순찰. 하지만 한 팀 정원인 7, 8명 중 2, 3명만이 순찰 업무를 할 뿐, 나머지 인원은 범인 검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다른 관내에 가서라도 기소중지자나 수배자 등을 잡아오라는 팀장이나 소장의 지시가 내려온다. 그래서 팀마다'사복 특공대'를 조직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임의동행이라는 변칙과 불심검문이라는 무리수가 발생하고 있다. 범인 검거 실적에 따라 개인과 팀, 파출소의 점수가 오르기 때문에 무리한 임의동행과 불심검문 등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이들은 더 큰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공중전화를 이용해 자신이 112신고를 하고 출동하는가 하면, 실종사건 점수를 받기 위해 눈에 보이는 가출 청소년을 몽땅 잡아들이기도 한다. 간단한 접촉 사고에도 사고 당사자들의 합의는 무시한 채 질서협력장 발부를 남발하고 있다. A경사는 "출동 점수, 스티커 발부 점수마저도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당연히 실적 이외의 것은 등한시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어렵게 잡은 범인을 놔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 강북지역 B, C 경찰서간에 빚어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B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의 용의자를 C경찰서의 지구대에서 검거했지만 B, C경찰서 어느 곳도 용의자를 넘겨받으려 하지 않았다. 실적이 지구대에 돌아가니 자신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임의동행 가능 시간인 6시간이 그대로 흘렀고 C경찰서 지구대는 용의자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실적 올리기의 한편에선 감찰이 공포로 다가온다. 서울경찰청은 물론이고 관내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의 감찰에 대해 일선에선 '무자비'하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감사관실 내에서도 감찰 실적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조회시간에 졸고 있다는 지적, 어제 잠은 어디서 잤냐는 추궁, 간혹 머리가 길다는 훈계까지 듣는 것이 현실이다. A경사는 "10여명 정도 떼감찰이 나오면 긴장 때문에 초주검이 된다"고 토로했다.
A경사는 끝으로 "실적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아예 업무는 제쳐두고 고시원에서 승진시험 공부를 하거나, 경찰대 출신의 경우 대학원 진학 등을 이유로 휴직하고 고시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며 "모두 성과주의의 폐해 아니겠냐"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 평가상위 경찰서장 목소리
"일을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동기유발이 된다는 얘기다." "관내에서 발생하는 강ㆍ절도 등을 우선적으로 검거하면 자연스레 주민만족도도 올라가게 돼 있다."
조직운용을 비판한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의 하극상 사태 이후 조현오 서울청장의 성과주의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치안수요에 따라 나눠진 A~C그룹 내에서 최상위(가 등급) 평가를 받은 서울 일선서(12곳)의 서장들은 제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실적과 경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운용의 묘를 살릴 것을 주문했다.
A에서 상위평가를 받은 한 서장은 "예전부터 범죄첩보 공유는 했었지만 이를 강화해 좋은 첩보들을 연결해 조합한 결과 범인을 잡는데 한층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죄 파악에 대한 평가로 현장감식활동이 활발해 진 것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했다. 그는 "올해만 DNA나 지문 등 감식작업으로 강도 등 106건을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민 만족도도 평가 요소 중 하나이니 관할지역 범죄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 한 노력도 실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C에서 상위평가를 받은 서장은 운용의 묘를 강조했다. 그는 "성과주의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조직을 화합하는 게 급선무"라며 "팀 별로 자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협조 분위기를 만들고 인사 고과나 포상 휴가 등을 통해 성과에 대한 보상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과주의가 단순히 특정분야만 아니라 여타 분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나왔다. 모 경찰서장은 "교통 분야에서 1등을 했는데 이것이 내부 경쟁으로 이어져 수사ㆍ정보ㆍ보안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체급이 비슷한 경찰서끼리 경쟁하게 하고 성적이 좋으면 주말 휴무도 보장해 주는 등 성과주의 자체가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 성과주의 어떻게 운영되나
경찰청은 2006년 4월부터 정부 업무평가기본법 시행에 따라 다른 행정부처와 마찬가지로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검거실적, 교통사고 감소실적, 주민대상 치안 고객만족도 조사결과 등의 평가항목을 두되, 각 지방청의 자율운영을 강조했다. 이후 성과주의가 조직에 긴장과 경쟁을 불어넣어 활력과 실적을 내고 있다는 자체 평가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서울경찰청의 '조현오식 성과주의'는 일선 서장의 하극상까지 불러왔을까. 경찰 내부에선 조현오식 성과평가가 옥상옥(屋上屋)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청이 시행하는 치안성과평가만 해도 일선 서가 감당하기 힘들 텐데, 서울청에서 추가로 한층 강한 잣대를 들이미니 (일선 경찰의) 고충이 대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부임 직후인 2월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경찰서 관서평가' 지침을 내렸다. 살인 강도 등 주요범죄 발생건수, 교통사고 현황, 직원 수 등을 고려해 치안 수요가 많은 순서대로 A(영등포 중랑 마포 등 10곳) B(강북 강동 금천 등 14곳) C(종로 은평 혜화 등 7곳) 등 3개 그룹으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평가는 두 달에 한 번 청문감사 생활안전 수사 형사 교통 등 각 기능별로 이뤄진다. 형사의 경우 기획수사로 범인을 얼마나 잡았는지, 강ㆍ절도 사건을 얼마나 빨리 해결했는지 등으로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서울경찰청은 평가결과에 따라 경찰서 관리 방식을 달리했다. 각 그룹에서 '가'(최우수)등급을 받으면 서장에게 서 운영에 대한 전적인 자율권을 주고, 서장과 각 과장들에게 월 4회 주말 휴무를 보장했다.
그러나 최하위인 '다'등급이면 집중감찰을 받는다. 성과주의에 반발한 강북서는 B그룹에서 4개월 연속 '다'를 받아 20일간 감찰을 받았다. 업무태도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파고드는 집중감찰은 '떼감찰'로 불릴 만큼 공포의 대상이다. 설상가상 전체 등급과 관계없이 기능별 하위 3개서는 해당 기능에 대한 감찰을 또 받아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평가 기준도 문제다. 최근 양천서 형사들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피의자를 고문한 사건이 문제가 되자 "자백에 의한 여죄 규명 배점을 줄이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일선 경찰들은 "매주, 매달 세부지침이 바뀌니 헷갈린다"고 불평했다.
더구나 매년 평가해 성과급과 우수관서 포상을 하는 본청의 치안성과평가와 달리 서울청의 평가는 두 달마다 이뤄지고 인사와 연동된다는 점도 일선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요즘 불심검문 잦다 했더니…'실적 후유증' 인권위 진정 급증
과도한 실적평가로 인한 후유증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용의자 검거를 위해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불심검문, 가점을 받기 위한 여죄 추궁 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부당 처분 등에 피해를 봤다며 경찰을 상대로 인권위에 접수한 진정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30일 인권위에 따르면 경찰의 불심검문에 따른 인권침해 진정 횟수는 2006년 7건에서 2008년 36건, 지난해 37건으로 매년 늘어났고 올해 5월까지만 19건이 접수됐다. 불심검문 관련 상담 건수 역시 2006년 17건, 2008년 27건, 지난해 51건으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
경찰을 피진정인으로 한 전체 인권침해 진정 건수는 지난해만 1,203건. 인권위는 이 중 122건에 대해 경찰에 주의 또는 경고 조치, 개선지침 마련 등의 일반 권고를 내렸으며 경찰관에 대한 수사의뢰 및 고발도 각각 2차례나 된다.
인권위 관계자는 "경찰로 인한 인권침해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안까지 고려한다면 더 많은 사례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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