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입니다. 새로운 한 달을 선물하는 달력의 첫 장 앞에 서봅니다. 어디선가 달콤한 '청포도' 내음이 밀려옵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시인 이육사는 노래했습니다. 7월이 되면 그 노래가 주술이 되어 나를 꿈꾸게 합니다. 마음이 둥근 수평선처럼 열립니다.
그 수평선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흰 돛을 단 배를 타고 찾아올 것 같습니다. 아이처럼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에서, 노트북에서 나를 독촉하는 분주한 디지털의 시간을 모두 꺼내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 꽁꽁 얼려버리고 싶습니다.
인적 드문 깊은 산골 발가벗은 개울물 소리처럼 자유롭게 흐르고 싶습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풀어버리고 푸른 하늘로 피어오르는 은현리 뭉게구름을 차고 다니고 싶습니다. 몇시냐고 급하게 묻는 친구들에게 솜사탕 같은 구름을 꺼내 보여주고 싶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명함 대신에 동해바다 고래를 건네주며 인사하고 싶습니다.
그 고래를 가슴 속에 넣어두고 이 여름 건강하게 지내라고 축복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물잔 속으로 가장 빛나는 별 하나를 몰래 넣어주고 싶습니다. 그 별이 밤마다 당신을 뜨겁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올 한 해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는 나머지 길이 익어가는 청포도처럼 싱그러웠으면 합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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