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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하얀리본' 순수의 리본은 어떻게 광기의 완장으로 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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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하얀리본' 순수의 리본은 어떻게 광기의 완장으로 변하는가

입력
2010.06.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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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13년, 평화롭기 그지없는 독일의 한 시골마을에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따른다. 마을 의사는 말을 타고 가다 누군가 몰래 설치한 줄 때문에 낙마해 크게 다치고, 한 농부의 아내는 마을의 영주나 다름없는 남작의 헛간에서 일을 하다 추락사한다. 마을 축제날 남작의 양배추밭이 훼손되고, 남작의 어린 아들은 잠시 실종됐다 볼기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된다.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나고, 아내를 잃은 농부는 스스로 목을 맨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과연 누가 이런 끔찍한 일들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을까. '하얀 리본'은 통속적인 스릴러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왜 한적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던 마을이 조금씩 불신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지를 정치하게 파고들며 관객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한다. 그 과정은 스크린만한 크기의 커다란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빌린 도입부 내레이션에서 아예 "많은 것들이 애매하고 많은 질문이 남아있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영화의 숨겨진 메시지를 깨달았을 때의 전율이 만만치 않다.

흑백 화면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의 이면을 조금씩 소개할수록 관객은 혼돈과 경악 속으로 빠져든다. 의사는 마을 산파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딸과의 천륜까지도 부정한다. 천진난만한 듯한 아이들은 그들만의 비밀을 만들어가며 어른이 없는 곳에서 스스럼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은 공개석상에서 남작의 음덕에 감사를 표하지만 뒤에선 그의 괴팍한 성격을 입에 올리며 두려워한다. 사소한 잘못도 놓치지 않으며 아이들을 옥죄는 목사의 행동도 마을을 숨막히게 만든다.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듯한 마을이 사실 지배와 피지배의 정교한 종속관계, 억압과 핍박의 숨막히는 폐쇄적 구조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영화는 나지막한 톤으로 암시한다.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 이 나라의 일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는 대사는 당시 독일의 사회상이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마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영화는 우회적 화법으로 일관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가까워질수록 감독의 연출의도가 뚜렷해진다. 종교와 정치에 억눌려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전쟁과 파시즘 등의 집단적 광기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고 모두 참석한 그 주 예배엔 시작의 기운이 맴돌았다. 이제 모든 게 바뀔 것이다"는 영화 끝부분의 내레이션에서는 소름이 끼친다. 공동체 내부의 억압과 불안으로부터의 탈출 욕구가, 공동체 외부와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와 '퍼니 게임' '히든' 등을 만든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카엘 하네케 작품.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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