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연기를 줄곧 반대해왔다. 원론적으로 동맹국 사이의 중대한 합의를 어지간하면 이행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에서였다. 연기론자들이 제시하는 연기 이유들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해왔다. 합의 이행을 미룬다면 반드시 불필요한 정책적 혼선과 비용이 야기되고, 사회적 갈등과 국론분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만에 하나 대통령과 정부가 연기를 작심하고 추진하고자 한다면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함도 제시해왔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자 주권과 연관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이런 이슈에 대해 겨우 공론화를 시작한 마당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연기를 합의하고 2015년 12월 1일로 날짜까지 못을 박았다. 전작권 전환 연기가 얼마나 막중하고 시급했으면 정상외교의 관례상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세세한 실무적 사안까지 합의하고 발표했는지 알기 어렵다.
우리 정부와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최근까지 전작권 전환은 예정대로 이행할 것이며 준비도 순탄하게 잘 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던 터라 이번 합의를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렵다. 미국 정부 역시 한국의 국회, 시민사회, 전문가집단 내부에 어떤 의견이 있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검토를 했는지 의문이 간다.
청와대와 정부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다는 방침은 상당히 오래 전에 섰다. 그 방침에 따라 지난 몇 개월 동안 한미간에 물밑 교섭이 진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 사태와도 무관하게 연기 작업이 진척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미 양국 정부가 철저하게 연막을 치고 밀실에서 결정하고 은밀하게 물밑 협상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기 합의를 두고 우리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야당은 밀실외교의 전형이라고 규탄하면서 무슨 '뒷거래'가 있었는지 밝히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에서는 야당의 태도가 '노예근성'에서 나왔다는 막말까지 등장하여 때아닌 정쟁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사회는 군사주권 회복의 포기, 밀실 협상, FTA 재논의와 맞바꾼 거래라면서 비난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안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 이 같은 정쟁과 사회적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다시 한번 신뢰를 잃는 빌미를 제공하였고, 미국 정부도 한국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사게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현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한미동맹의 강화를 중시해왔다. 그리고 한미관계를 성숙하고도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도 한미동맹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정반대로 성숙하고도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작권 전환을 가능한 한 조속히 이행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생각도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2006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전작권 전환 합의를 했을 때 미국은 2009년에 전환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의 안보불안감, 우리 군의 준비 시간 등을 감안하여 최대한 시간을 벌고자 2012년으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미국의 의견대로 지난해 전작권을 전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천안함 사건 같은 참혹한 일이 일어났을까? 일어났다면 우리 군이 어떻게 대응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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