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료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의료강국 코리아'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한국 선진 의료를 경험한 외국 환자들은 또다시 한국으로 찾겠다고 말할 정도다.
간이식을 비롯해 심장수술, 암치료, 뇌신경치료, 인공관절수술, 척추수술 등의 분야가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5년 내 아시아 1위 병원, 10년 내 세계 10대 병원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을 시작으로 주요 병원의 최첨단 의료기술을 소개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파란 눈을 가졌거나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의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선진 의료기술을 배우러 온 외국 의사들이다. 지난 달 7일 이른 아침 서울아산병원 3층 심혈관조영실에서는 일본과 인도, 중국 등에서 온 10여명의 의사가 눈과 귀를 쫑긋 세운 채 교육에 열중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 스텐트 시술 권위자인 박승정 심장병원장의 시연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 외국의사는 스텐트 시술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갖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이처럼 서울아산병원의 심장혈관 질환 중재치료 시술은 외국 의사들을 가르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게다가 스텐트 시술이 어려운 환자는 흉부외과 수술팀과 유기적인 협진으로 수술함으로써 서울아산병원은 최고의 심장수술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은 '월드 베스트 심장병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스텐트 시술'
이 같은 내과, 흉부외과의 유기적 협조와 치료법의 놀라운 진보는 서울아산병원이 지난해 심장병원을 만들면서 완성됐다. 박승정 심장병원장은 1989년 승모판이 좁아져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승모판 협착증 환자에게 대퇴동맥을 통해 풍선을 집어넣어 좁아진 판막을 열어주는 '풍선판막확장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이어 1991년 협심증 환자에서 금속망을 넣어 심장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도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에 따라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던 '관상동맥 우회술'이 스텐트 시술로 점점 바뀌었다. 요즘에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이 심장혈관이 좁아진 협심증 환자에게 상대적으로 간편한 스텐트 시술을 시행한다. '위험한 수술'에서 '간단한 시술'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재원 심장병원 흉부외과 교수팀이 시행하는 관상동맥 우회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술 성공률을 기록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즉, 내과적인 시술과 외과적인 수술의 진료수준이 함께 발전함으로써 환자의 심장질환 상황에 유기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이 서울아산병원이 이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세계적 수준의 심장병원으로 주목 받는 이유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돌연사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심장혈관 질환이다.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이 담긴 혈액을 보내는 심장혈관이 흡연과 콜레스테롤,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혈관에 동맥경화증이 생기면 혈관이 좁아져 피가 적게 공급되면서 심장근육이 빈혈이 돼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협심증). 특히 심장혈관이 갑자기 막혀 심장근육에 피가 전혀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근육이 죽게 된다(심근경색증).
박승정 심장병원장팀은 이렇게 중요한 심장혈관 중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부위인 좌관동맥 주간부(Left Main)가 막히는 협심증환자에서 스텐트 시술 효과를 입증함으로써, 스텐트 시술이 가슴을 여는 심장수술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박 심장병원장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2008년 4월 국내 의학자로는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발표해 세계 의학계를 놀라게 했다.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의 협심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은 그룹과 수술을 받은 그룹의 3년 생존율을 비교한 결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물론, 모든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 환자를 스텐트로 치료할 수는 없지만, 외과 수술을 받는 상당수 환자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간단한 시술로 치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스텐트를 이용한 대동맥 판막 협착증 국내 첫 시술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째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강모(80)씨는 2008년부터는 거동이 더 힘들어지고 숨이 차는 증세가 심해져 심장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고령인의 대표적 심장질환인 퇴행성 대동맥판막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심장에서 온 몸으로 피가 나가는 가장 큰 혈관의 대문이 쪼그라들어 잘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판막 협착증이 생긴 것이다.
이 병이 강씨에게 특히 심각한 것은 지금까지 대동맥판막협착증을 완치할 방법은 수술밖에 없는데, 80세라는 고령으로 전신마취 상태에서 가슴을 여는 큰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 뇌졸중 등 지병이 있어 사실상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약물치료로 연명하던 강씨는 올 4월 스텐트를 이용한 간단한 대동맥 판막 대치술을 받은 뒤 지긋지긋한 호흡곤란, 갑작스런 실신,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런 퇴행성 대동맥 판막 협착증은 특성상 70대 이상 고령에서 생기고, 많은 환자는 당뇨병과 고혈압 등 다른 동반질환으로 인해 전신마취가 어려워 가슴을 열고, 병이 있는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 판막을 넣는 큰 수술이 힘들다.
박 심장병원장팀은 수술이 불가능한 대동맥 판막 협착증 환자 3명을 대퇴부에 있는 혈관에 좁은 관을 넣고 특수 스텐트로 인공 판막을 대동맥 판막까지 닿게 한 다음 좁아진 판막 사이에 인공 판막을 넣고 풍선으로 넓혀 고정하는 스텐트 시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시술은 1시간 정도 걸렸으며, 환자는 퇴원 후에도 통증이나 운동장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고, 수술 후 입원기간도 3일 정도로 짧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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