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자'고 쓰려니 너무 식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주저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교육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교육 이야기를 하자니 기본에 충실하자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기본은 읽기와 쓰기다. 이 두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어서 능력에 비해 순탄하게 공부하였고,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 그것도 선생님이 되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직장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안식년 제도 덕분에 미국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의 교육제도가 궁금했다. 해답을 얻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의 힘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학생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미국 학생들은 책을 많이 읽고 자주 글을 쓴다.
독서는 지식을 넓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사고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양한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교육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오늘날 시민사회의 최대 미덕은 남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읽고 쓰기야말로 시민의 덕목을 기르는 기초 교육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미국 학생들은 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읽고 쓰는 양을 살펴보면 중ㆍ고교, 그리고 대학으로 갈수록 엄청나게 늘어난다. 학년마다 읽어야 할 책의 목록도 무수히 제공된다. 공공도서관에서 언제든 이런 책을 빌려볼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읽기와 쓰기가 국어시간에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어와 역사책은 물론 과학과 수학책에도 많은 읽을 거리가 담겨 있다. 학습 평가도 사지선다형과 단답형부터 한두 줄 쓰기, 짧은 에세이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읽고 쓰기를 특정 과목 교사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모든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 영역에서 학생들이 읽고 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읽고 쓰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한 미국 학생들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각종 보고서와 논술과 같은 에세이를 그리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과 복합적인 판단력을 배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공부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교과서를 얇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많은 내용을 다 집어넣는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는 읽는 책이 아니라 외울 것들만 수두룩한 게 된다. 그래도 초등학생들은 책을 읽는 편이라고 한다. 어떤 출판사 사장님이 초등학생용 서적은 불황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책을 잘 읽다가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입시 때문에 책을 읽지 못한다. 대학은 어떤가? 이미 취업 공장이 되어, 이력서 채우는 일에는 열중하지만 고급 사고력을 기르고 인류가 남긴 풍부한 지적 자산을 맛보는 독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점은 깊은 사고력이다.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화이트헤드는 "잡박(雜駁)한 지식만 소유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통박했다. 어떤 분들은 또 미국 운운하는가 하고 불편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누가 뭐래도 백년대계다. 교육의 기본은 읽고 쓰기다. 미국의 힘은 바로 이 기본에 충실한 교육 덕분이라고 감히 몇 자 적어본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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