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내에 '추종자'가 많았다.
188㎝ 큰 키에 긴 팔다리. 크게 힘들이지도 않고 툭툭 치다가 쏘는 반 박자 빠른 슛은 그가 속한 프랑스 대표팀의 별명처럼 '아트'가 따로 없었다. 여기에 골을 성공시킨 뒤 당연하다는 듯 짓는 '시크한' 표정까지. 티에리 앙리(33ㆍ바르셀로나)는 천재 골잡이에 목마른 국내 축구팬들에게 둘도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남아공월드컵의 열기로 68억 지구촌이 들썩이고 있는 지금, 앙리는 흘러간 스타의 뒷얘기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곤살로 이과인, 다비드 비야, 루이스 수아레스 등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앙리의 뒷모습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소속팀에서도 밀려나 새 둥지를 알아봐야 할 판이다.
AP 통신 등 외신들은 29일(한국시간) 앙리와 바르셀로나의 결별을 기정사실화했다. 내년까지 계약기간이 남아있지만 앙리의 해지 요구를 바르셀로나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앙리가 프랑스 리그나 미국 리그 등 사실상 변방에서 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94년 프랑스 리그의 AS 모나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앙리는 99년까지 105경기에 나서며 20골을 기록,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96~97시즌에는 '올해의 신예'상도 수상했다. 이후 이탈리아 리그 유벤투스(16경기 3골)를 거친 앙리는 99년 8월 마침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유니폼을 입었다.
앙리가 세계 최고 공격수 논쟁에서 빠지지 않게 된 것은 찬란하기만 했던 아스널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나코 시절 자신의 재능을 이끌어냈던 아르센 웽거 감독을 다시 만난 앙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녔다. '섬세함이 최대 장점인 앙리는 거친 프리미어리그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월등한 성적표로 그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인 99~2000시즌 성적은 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컵 등을 통틀어 26골 11도움. 새 리그에 연착륙한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사상 첫 5시즌 연속(2002~06년) 리그 20골에다 리그 득점왕을 4차례(2002, 2004~2006년)나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어느새 '킹(King)'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아스널에서 2006~07시즌까지 8시즌을 뛴 앙리는 통산 226골(92도움)로 구단 신기록을 세운 뒤 네 번째 팀으로 떠났다. 그러나 스페인 리그의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앙리는 아스널 시절의 앙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2009~10시즌에는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틀어 32경기에 출전, 고작 4골 3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윙어로서의 앙리는 상대에게 위협적이지 못했고 결국 열살 어린 페드로 로드리게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소속팀에서 퇴물 취급 받는 앙리를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기용할 리 없었다. 앙리는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우루과이전서 후반 27분, 남아공전서 후반 10분 교체 투입돼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일랜드와의 유럽 플레이오프 '신의 손'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앙리는 명예 회복 무대로 삼으려던 사실상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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