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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3) 다양해진 농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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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3) 다양해진 농촌사회

입력
2010.06.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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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공경·출산 웃음꽃…"필리핀 며느리들이 동네 복덩이"

"동네 어르신들 생일상은 언제 차려 드리기로 했어?"

25일 오후 8시께 충북 청원군 가덕면 한계2리 한시울마을 이장 한명동(44)씨 집. 어스름한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 마당으로 부녀회장 이종수(63)씨가 들어서며 노인 잔칫상 차려 주기 행사 일정을 물었다. 밭일을 막 마치고 돌아와 발을 씻던 한명동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글쎄요. 언제 해야 하나. 농번기라 시간 내기도 쉽지 않고. 주환 엄마, 언제 하지? 이번에 생신 맞으시는 분은 몇 분이야?"

"도랑 건너 양달마을 할머니 두 분이에요… 잔칫날은 동생들하고 상의해서 잡아야죠. 부녀회장님, 날짜 잡아서 연락 드릴 게요." 이장댁이 부엌에서 큰 소리로 대답하며 나오는 데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큰 눈망울을 가졌다. 4년 전 필리핀에서 시집온 미첼 가부요(34)씨다.

그가 말하는 동생들은 함께 한시울마을로 시집와 살고 있는 필리핀 여성 아도라 파우익(28)씨와 지나 라피탄(32)씨다. 이들 셋은 한 마을 출신이다. 필리핀 루손섬 북동부에 자리한 리와나마을.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꼬박 12시간 걸리는 곳인데 벼농사를 주로 짓는 전형적 농촌이다. 이들과 백년가약을 맺은 한시울마을의 한명동씨와 한운동(44)씨, 정석희(44)씨는 죽마고우다. 또래들은 일찌감치 도시로 떠났지만 이들은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한명동씨는 이장, 한운동씨는 새마을지도자, 정씨는 반장을 맡아 마을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다.

필리핀의 한 마을 처녀 3명이 한국의 한 마을 농촌 총각 3명한테 줄지어 시집온 사연은 이렇다.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해 고민하던 한명동씨는 사돈댁 소개로 가부요씨를 만난 뒤 첫눈에 반해 2006년 9월 부부가 됐다. 친구가 필리핀 부인을 얻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면서 임신까지 하자 한운동씨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를 눈치 챈 가부요씨가 한운동씨에게 고향 후배 파우익씨를 소개했고, 두 사람은 2007년 6월 결혼에 골인했다. 정씨는 한운동씨 부부가 중매했다. 착하고 진솔한 그의 성품을 눈여겨본 파우익씨가 자신의 사촌 언니 라피탄씨를 소개한 것이다. 이들이 지난해 4월 결혼하면서 한운동씨와 정씨는 동서지간이 됐다.

이국의 새댁들은 가라앉은 마을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24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한시울마을은 32번지방도로에서 꼬부랑길을 따라 5㎞나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 젊은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마을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필리핀 며느리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부요씨가 아들(주환∙3)을 낳았고, 파우익씨는 딸(라은∙2)을 얻은 뒤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라피탄씨는 25일 첫딸을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새댁들은 마을 간부의 부인들답게 동네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경로잔치가 열릴 때는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들 대접하고 설거지하는 일을 도맡는다. 셋은 시어머니 극진히 모시는 것도 닮았다. 노인회장 김홍륙(78)씨는 "마을 일에 앞장서며, 동네 어른들한테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참 곱다"면서 "필리핀 며느리들이 동네 복덩이"라고 칭찬했다.

새댁들은 한국어, 한국 문화 배우기에 열성을 보이며 이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청주시에 나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셋이 모여 부침개나 잡채를 해 먹으며 놀기도 한다.

가부요씨는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해 곧 군이 운영하는 다문화센터에서 통역사로 일할 예정이란다. 그가 "통역사 해서 돈 벌면 어머니 용돈은 제가 책임질게요"라고 하자 시어머니 이인선(72)씨는 연방 며느리의 손을 어루만졌다. "손주 낳아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내가 무슨 복인지 모르겠어."

부부 금슬이 좋아 5월 부부의날에 도지사 표창을 받은 한명동씨는 "아내가 힘든 농촌 생활을 이해하고 묵묵히 따라 줘 더욱 고맙고 사랑스럽다"며 "농한기에는 필리핀 처가 마을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농사일도 도와 드리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가덕 면사무소 주민지원담당 지형규(52)씨는 "한시울마을은 군내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지만 결혼이민여성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가장 활기찬 마을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한덕동기자 ddhan@hk.co.kr

■ 인터뷰/ 전만길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협회장

"결혼이주여성은 머지않아 한국 농촌을 짊어지고 갈 주역이 될 겁니다. 당연히 농촌 정책도 다문화 중심으로 새롭게 짜야겠지요."

전만길(52) 전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장은 다문화 가정에 대해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가 도움을 청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농촌에서 노인이 아프면 도시에 사는 자식이 달려오나요? 아닙니다. 옆집에 사는 다문화 며느리들이 와서 도와줍니다. 아이 낳고 노인 부양하고 부족한 농촌 인력을 보충하고… 결혼이주여성은 노쇠한 농촌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돼 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와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앞서야 해요.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그들의 존재와 가치를 인식한다면 저절로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에요"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전국 100여개 민간 단체를 모아 전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꾸린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결혼이주 문제 전문가다. 오랫동안 한국어, 한국 문화 교육에 앞장선 까닭에 결혼이주여성 모두 '친정 엄마'라고 부른다.

그가 결혼이주여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충북 청주YMCA에 한국어학당을 열면서부터. 대학원 전공(한국외국어대 한국어교육과)을 살려 봉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다문화 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국에 보급했다.

2004년 3월 그가 고향 충북 옥천군에 세운 옥천한국어학당은 가장 성공한 결혼이주여성 도우미 전문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따뜻하고 알찬 교육 프로그램이 소문나면서 국내ㆍ외에서 벤치마킹하려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2006년 이주민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로마 교황청의 수녀들이 다녀갔고, 네팔과 스리랑카의 보건복지 관계자와 일본 도쿄(東京)대 연구원 등이 견학을 하기도 했다.

전씨는 결혼이주여성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제1조건으로 경제 자립을 꼽는다. 그는 "상당수 결혼이주여성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교육을 펼치고 상설 작업장도 마련해 소득 증진을 도와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적으로 정착 초기 단계의 결혼이주여성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는 끝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여러 정책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다문화 지원책은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 단체별로 중복되고 어지럽게 혼재해 있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당장 시급한 결혼이주여성의 경제 자활, 다문화 2세에 대한 체계적 교육 등 큰 줄기를 잡아 나가야 건강한 다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옥천=한덕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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