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인숙 칼럼] 트윗하는 청와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인숙 칼럼] 트윗하는 청와대

입력
2010.06.29 13:20
0 0

트위터(twitter)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지저귀듯 지껄이다'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 밑으로 흥분, 흥분으로 떨림이라는 뜻도 있다. 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재잘거림, 혹은 조잘거림 쯤이 될까.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없이 재잘거리는 말에도 약간의 흥분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 역시 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설레임쯤이 될까.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 그것에 설레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대방에게라면 더욱 그러하겠다. 말하자면 소통의 욕구일 텐데,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작은 늘 그렇게 사소하고 미미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트위터의 시작은 누군가의 창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같다고도 하겠다. 여보세요, 거기 내 말이 들리나요?

소통의 욕구와 설레임

세상이 아이폰 있는 사람과 아이폰 없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길래, 아이폰 있는 사람 쪽으로 존재 이동을 한 것이 두어 달쯤 전의 일이다. 가장 먼저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는데 팔로우 하나 없이 혼자서 재잘거린다는 게 말 그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터가 떠올랐다. 모래밭에 홀로 앉아 누군가 나하고 놀아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설레임과 약간의 흥분을 안고, 내가 누군가에게 놀 만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기대하며 짐짓 제일 좋은 장난감을 제일 잘 보이는 데다 놓아두는 것이다. 설레임이 곧 조바심으로 바뀐다. 저녁밥 먹으라고 엄마가 부르기 전에 누군가가 나타나 놀아주면 좋을 텐데.

나이 들어도 소심한 성격이 잘 변하지 않아, 혹은 나이 들어 더욱 그러한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먼저 놀자고 말하는 걸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트위터는 사방에 대고 놀자고 말해도 무방한 놀이터다. 말이 짧아 구질구질함도 면할 수 있다. 면하는 것이 있는 대신 짧은 말의 긴장은 면할 수 없다. 고참들께서는 웃으실지 모르나 이것이 초보 트위터의 생각이다.

또 페이스북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다. 그곳에서는 나처럼 소심한 사람을 위해 친구를 마구 소개해준다. 페이스북의 내 친구가 올린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있다 보면 아들의 친구와도 친구가 되고 친구의 남편과도 친구가 되고, 친군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된다.'정말 그렇다. 어쩌다 보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인과도 친구가 되어 있다. 친구 만들기 정말 쉽다.

청와대에서 트위터를 개설한다는 기사를 봤다. 트위터가 트렌드이니 청와대에서도 그쯤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겠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 실렸던 글이 떠올랐다. 시골 초등학생이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무슨 부탁인가를 했고,'대통령 할아버지'가 그 아이의 소망을 들어줬다는. 이제 와 생각해보면 대단히 정책성의 글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코끝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내 편지는 읽어주실 것인가? 글 속의 아이는 대통령 할아버지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도구보다 진실의 문제

청와대 트위터를 이용하면, 번거롭게 고민할 필요 없이 실시간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그것을 기대해볼 수는 있다는 뜻이다. 트위터에 올리는 글은 140자 이내로 제한된다. 4대강 개발 그거 왜 하는 거죠? 물어보는 말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140자 이내로 무슨 답변을 내놓을지. 거창한 시국문제가 아니라도 그렇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간격이 너무 늦어요 라고 물으면, 그런 건 지자체 트위터에 올리세요 라고 답변할까? 아니면 무시해 버릴까.

소통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의 문제이다. 140자의 짧은 말이 통할 수 있는 건 이해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트위터가 문제인 게 아니라 140자 답변의 믿음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기껏해야 몹쓸 농담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야말로 재잘거림도 못 되는 주절거림으로 여겨지거나.

김인숙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