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심장부에 한국타이어·삼성의 힘찬 맥박이 쿵쿵쿵…
지난달 17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자 'HANKOOK TIRE' 라는 주황색 글씨가 새겨진 공장 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라칼마스시 '한국타이어 1구'. 이 곳 행정 구역 이름이다. 김용성 KOTRA 부다페스트 무역관 차장은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에 이바지한 한국타이어를 위해 시에서 이름을 선물했다"고 귀띔했다.
이 곳 공장에선 현재 유럽 26개 나라로 수출되는 고성능 승용차용 타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이상일 한국타이어 헝가리법인장은 "하루에 1만7,000개를 찍어내고 있는데 생산 시설이 모자라 물건을 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공장 한 쪽에선 제2공장 공사가 한창이다. 홍보를 담당하는 로이 카탈린씨는 "2011년 8월 마무리를 목표로 6,000억원 가까운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연 500만개 생산 능력이 1,000만개로 늘어나면 유럽 전체 판매량의 60%(현재 30%)를 이 곳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 공장은 중국(2곳)에 이은 3번째 해외 생산기지로, 지난 1월 누적 생산량 1,000만개를 돌파했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유럽 현지 생산 기지 건설을 추진한 한국타이어는 2007년 6월부터 이 곳 공장을 가동했다. 헝가리를 택한 이유를 묻자 이 법인장은 "헝가리는 유럽의 한 가운데 있어 '유럽의 심장'이라 불린다"며 "전엔 한국이나 중국 공장에서 유럽에 타이어를 공급하려면 45일 가량 걸렸지만 이젠 공장 바로 옆 고속도로(M6)를 통해 유럽 어디든 5일이면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소비자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이 법인장은 "유럽 거래선이나 판매상을 공장으로 초청,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과 기술력을 이해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며 "올해 폴크스바겐의 공장 현장 평가에선 100점 만점에 94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특히 유럽에서 신차용 타이어 판매 비중을 높이려는 회사의 중장기 전략 상으로도 헝가리 공장은 매우 중요하다는 게 이 법인장의 설명이다. 현재 유럽에는 타이어 공장이 88개나 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차용 타이어를 선점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타이어는 현재 독일 폴크스바겐 8개 모델, 메르세데스 벤츠 1개 모델 등 9개 종류의 신차용 타이어를 납품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대형 딜러에게 의존하는 판매 방식에서 탈피, 자사 유통망 '한국마스터스'를 강화하는 한편 현지 소규모 점포까지 판매망을 넓히는 현지화 전략을 펴고 있다. 이 법인장은 "세계 5위 타이어 회사 도약을 위한 전진 기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뿐 아니다. KORTA에 따르면 헝가리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은 모두 50여개. 그 중 삼성전자가 가장 돋보인다. 삼성전자헝가리법인(SEH)는 지난해 헝가리 전체 기업 중 매출액 9위(약 3조4,000억원)에 올랐다.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빼면 제조업 회사 중에서는 아우디(Audi), GE에 이어 세번째다. 헝가리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품목만도 6개다.
야스페니사루의 SEH 사무실에서 만난 장시호 법인장은 "1년에 1,700만 대의 LCD TV를 만들고 있다"며 "유럽 TV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생산 거점"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슬로바키아, 러시아 공장과 함께 유럽 평판 TV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자체 평가이다.
1989년 삼성전자는 헝가리 기업 오리온사와 50대50으로 SEH를 세웠다. SEH는 헝가리에 진출한 외국 기업 1호였다. 처음엔 영국 법인의 보조 생산 기지 역할에 머물렀지만, 98년 영국 CTV공장을 통합한 후 유럽의 핵심 기지로 떠올랐다.
장 법인장은 "해외 생산 기지의 성공 여부는 본사 기술력이 얼마나 현지 직원들의 손에 잘 녹아 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며 "한 가지를 알려주면 여러 가지를 알아서 응용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헝가리 직원들이 유럽 시장 공략의 일등공신"이라고 강조했다. 공장 내부에 걸린 직원 조직도의 각 파트 기술 책임자는 모두 현지인들이었다. SEH가 품질 개선을 위해 법인 직원은 물론 현지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품질 개선 교육 프로그램 역시 현지 기술자들이 이끌고 있다.
2006년 보르드 TV가 '대박'을 터뜨리고 경쟁 회사들이 투자에 주저할 때도 SEH는 되려 2007년 제 2공장을 증설했고, 해 마다 15% 이상의 판매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3D TV 시장의 성장이 무엇보다 반가운데, 여기에는 삼성SDI 헝가리 법인(SDHI)이라는 든든한 '짝꿍'이 큰 역할을 했다. SDHI는 야스페니자루에서 승용차로 겨우 40분 떨어진 괴드시에 위치했다.
2002년부터 SEH의 TV용 모니터를 생산하던 SDHI는 2007년부터 PDP TV 모듈도 만들어 왔다. 그러다 그룹 차원에서 PDP 사업 통합 경영 전략을 추진하면서 기존 모니터 사업을 접고 PDP TV 완제품을 직접 생산해 유럽에 팔고 있다. 박준범 SDHI 법인장은 "SEH의 LCD와 SDHI의 PDP가 3D TV 시대의 쌍두마차로 활약 중"이라며 "GE, TDK 등 세계 굴지 기업들도 공장 문을 닫는 것에 비해 우리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 처버 낄리안 헝가리 투자청장
헝가리의 외국 기업 투자 유치를 이끌고 있는 헝가리 투자청(ITD)의 처버 낄리안 청장은 "지난해 경제 위기 탓에 이웃 나라 해외 기업 대부분이 생산량을 줄인 반면 삼성전자와 한국타이어 등 헝가리의 한국 기업들은 오히려 생산량을 늘렸다"며 "헝가리가 한국 제조업의 성공에 작은 보탬이 된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한 한국 기업들의 헝가리 진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로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한국 기업들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앞으로는 일본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ITD에 따르면 한국타이어가 짓고 있는 제 2공장은 외국 기업의 단일 투자 건 중 가장 많은 액수이다. 삼양사 등 몇몇 한국 기업도 공장을 짓고 있거나 부지를 찾고 있다.
헝가리의 강점에 대해 낄리안 청장은 "2008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물류성과지수(LPI)에서 중동유럽에서 1위를 달릴 만큼 물류비, 세관, 수출입 소요 시간 등 모든 면에서 앞선다"며 "노벨상 수상자 13명을 배출했을 만큼 헝가리의 기술력이 뛰어난데도 임금은 서유럽 국가에 비해 3분의1 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낄리안 청장은 또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현지화에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예로 법인장은 한국인이라도 기술 책임자 등 중간 관리자는 헝가리인에게 맡기고, 현지 직원과 의사 소통을 위해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이런 노력들이 현지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고 해석했다.
낄리안 청장은"야스페니사루(삼성전자), 괴드(삼성SDI), 라칼마스(한국타이어) 등 죽어있던 지방 소도시들이 한국 기업의 선전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며 "수천개가 넘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방세 수익으로 수십년 동안 엄두도 못 낸 하천, 관공서, 학교 등을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특히 한국기업들이 장애인, 저소득층 어린이들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지 늘 고민하는 모습에 헝가리인 모두가 감동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칼마스·야스페니사루·괴드·부다페스트(헝가리)=
글·사진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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