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사건을 근본적으로 막을 대안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29일 '화학적 거세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경제적 측면을 제외하면 부작용과 인권침해 논란 등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화학적 거세란 성범죄 남성에게 여성 호르몬을 투여해 성욕을 인위적으로 감퇴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날 통과된 법안에는 전날 법무부가 제시한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화학적 거세란 용어를 '성충동 약물 치료법'으로 수정하고 약물 투여 시행에 강제성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수형기간 중 약물 투여를 하는 것도 출소 2개월 전으로 수정했다.
주사에 쓰이는 약물은 여성 피임용으로 개발된 데포 프로베라(Depo Provera), 황체 형성 호르몬인 루프론(Lupron) 등이다. 보통 1회 투여 시 4주간 지속 효과가 있는데 비용은 회당 20만~25만원이다. 통과 법안에 따르면 비용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되, 가석방될 경우에는 본인이 부담한다. 수용자 관리비용 측면에서 본다면, 전자발찌(1인당 연간 335만원)와 인성치료재활센터(400만원)에 비해 경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입법 취지와는 달리 화학적 거세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약물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고려대 하태훈 교수는 "약물 투여를 멈추면 남성 호르몬이 다시 분비돼 성욕이 되살아나는 문제가 있다"며 "이는 성범죄 재발을 막는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권 침해 문제는 도입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재교 변호사는 "국가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합법적으로 해치는 문제라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강구하기보다 치료 등 다른 방안을 연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부작용도 큰 걸림돌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치료 효과를 위해 출소 무렵부터 약물 투여를 할 예정인데, 이 경우 몰래 남성 호르몬 주사를 맞을 수도 있고 신체 변형도 생길 수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오랜 연구 끝에 범죄자 성향에 따라 약물 투여 기간을 영구적~몇 개월로 다양화해 1990년대 중반부터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 복용자가 여성의 신체로 변형돼 우울증으로 자살하거나, 약물 주입을 중단하자 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부작용 사례가 접수되기도 했다. 시행 전에 약물투입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기준과 한국인 신체에 맞는 약물 적정 용량 및 투여 시기 등을 상당 기간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안은 대상자를 성도착증 환자 또는 16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로 초범도 가능하다고만 밝히고 있다. 적절한 약물 용량 등도 포함돼 있지 않다.
예방치료를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한국에는 성범죄 조짐을 보이는 사람들이 조기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며 "전문적인 프로그램에 맞춰 미리 상담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서비스가 재발 방지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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