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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에너지 평등 사회] (2) 도시와 농촌 간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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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에너지 평등 사회] (2) 도시와 농촌 간 격차

입력
2010.06.2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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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일수록 여름 땡볕·겨울 혹한에 무방비 가구 많다

강원 평창군 평창읍 계장리의 한 빈농의 집. 1970년대에 지어진 12평 가량의 이 시골집에는 이상순(91) 조병화(81)씨 부부가 살고 있다.

주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겉보기엔 낭만적인 시골 농가다. 하지만 태양빛이 내뿜는 복사열의 기운은 얇은 슬레이트 지붕을 통과해 집안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노후한 집의 벽체에도 곳곳에 균열이 있어 열기가 그대로 새어 들어왔다. 한지로 막은 창에는 큰 틈이 나 있어 냉방 시설을 가동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을 듯 보였다.

이씨의 집에는 주방도 없어 방 안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 조씨가 막 음식을 조리한 방 안은 온통 악취가 진동했고 파리도 들끓고 있었다.

혹서기 대책 전무한 농촌의 차상위층

두 사람은 몸이 불편하다. 이씨는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고 조씨는 치매 환자다. 나이도 많다. 한여름 무더위는 선풍기 하나 없는 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유래 없는 폭염으로 하루 평균기온이 30도를 넘었던 94년 7월 22~29일 국내 총 사망자 수(교통사고 등 사고사 제외)는 1,074명으로 91~93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72.9% 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총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이 66.3%(713명)을 차지했다.

한겨울은 더 무섭다. 이씨 부부의 고령수당을 모두 합한 소득은 16만8,000원. 보일러에 들어가는 연탄 한 장의 지난해 가격이 440원. 한 번에 3장씩 때면 하루 3,960원, 한 달이면 11만8,800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낡은 집안의 문틈으로 열기는 잘도 빠져나간다. 에너지 효율이 낮아 한 달 소득의 70%를 난방비로 쓰고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없는 것이다.

사각지대의 에너지 빈곤층

이씨 부부의 농사라고는 집 앞의 텃밭에 상추 몇 개 심은 것이 전부다. 자식들 키우느라 논밭을 팔아 버려 남은 것이 없다. 생활 능력이 거의 0에 가깝지만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도 장애수당대상자도 아니다. 출가한 자식이 넷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 덕을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유전 탓인지 이씨의 자식 모두가 다리를 저는 등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는 이씨 부부는 낮에는 사회복지사가 가져다 주는 도시락으로 연명하고, 저녁은 직접 지은 밥과 김치로 때운다. 아침은 웬만하면 거른다.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에너지 확보는 생사의 문제다. 이는 냉방용 전기와 난방용 연료 확보의 어려움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돗물 값이 아까워 설치한 지하수 펌프는 수질을 담보할 수 없다. 치매를 앓고 있는 조씨는 개 사료를 끓이는 아궁이에서 끓인 물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다.

시골에서 더 가혹한 불평등

이씨 내외가 사는 곳은 액화천연가스(LNG)나 지역난방이 공급되지 않는 시골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도시가스공사나 지역난방공사가 파이프 라인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도시 저소득층은 액화석유가스(LPG)나 기름(등유) 보일러라도 쓸 수 있지만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10만원 남짓한 월 소득으로는 한 달에 30만~40만원이나 드는 LPG나 등유를 사용할 수 없다.

이는 이씨 내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방, 특히 시골이면 공통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수도권의 LNG 공급률은 60.6%였지만 지방은 39.4%에 그쳤다(한국도시가스협회 ). 2003년부터 2009년 사이 LNG 공급률은 충남 경북에서 각각 17.7%, 17.5% 포인트 늘어났지만 나머지 지방은 10% 포인트 이내의 증가에 그쳤다. 도시가스 공급이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는 주택개선사업으로 격차 메워야

사실 LNG가 들어온다고 해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70년대에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은 김씨 집은 흙벽 곳곳에 균열이 있고 창호지를 댄 나무 문이 낡아 틈새가 있어 열 손실이 많다. 마루 역시 개방형으로 돼 있어 단열이 어렵다.

평창군자활공동체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에너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 집에 도배를 새로 해 주기로 했다. 마루에는 섀시를 설치하고 투명 패널도 대 준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창과 벌어진 흙벽 틈을 메울 수는 없다. 가구당 100만원으로 제한된 주택개선사업 예산 때문이다. 또 단열재를 설치하면 열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단열재 가격이 너무 비싸 100만원의 비용으로는 방 하나를 다 막을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의 주거현물급여사업을 통해서도 이와 비슷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가구당 100만원의 상한을 두고 있어 도움이 못 된다.

때문에 정부 지원은 구호물자에 가까운 전기매트를 공급하는 식의 전시 행정이나 이중창호 몇 개를 설치해 주는 식의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토해양부는 경기 지역에서 가구당 600만원을 상한으로 하는 개ㆍ보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단일 사업자로 지정하고 지정 건축자재만 사용하게 해 새로운 건축 시장 수요 창출만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의 비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방치하면 온실가스가 대거 배출돼 기후변화 위기가 가중되지만 환경부는 이에 대한 대책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최승철 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은 "정책 당국을 일원화해 주택개선사업의 가구당 지원비를 늘리고, 특히 농촌 지역의 LNG 지역난방 등 저렴한 에너지원에 대한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며 "이들의 고탄소 저효율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농촌, 너무 먼 저가 에너지혜택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은 LNG와 지역난방 등 저가 에너지원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더 심각한 것은 농촌 지역 저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지식경제부의 에너지 총조사에 따르면 강원 지역 에너지 구성원 중 저비용 고효율 에너지인 LNG의 비중은 25.2%로 66%인 서울보다 크게 떨어졌다.

반면 지방의 고비용 저효율 에너지의 구성 비율은 매우 높았다. 강원 지역의 경우 에너지 구성원 중 석유류와 LPG의 비중이 각각 20.2%와 15.8%로 서울의 1%를 크게 앞질렀다. 또 강원 지역의 석유와 LPG 사용량은 2,147만8,000Gcal로 서울(420만9,000Gcal)의 5배에 달했다. 강원 충청 호남 영남도 사정은 비슷했다.

농ㆍ어촌 지역에서 난방 연료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45.9%)였다. 다음은 전기(15.4%) 연탄(12.1%) LPG(5.1%) 등 순이었다.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지역난방도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심하다. 지경부 산하 한국지역난방공사는 2006년부터 공공임대주택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열 요금 중 기본요금 전액을 감면해 주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이유다. 정부도 에너지 평등이 기본권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시설은 서울에만 몰려 있다. 한국에너지재단의 2007년 열 요금 감면 실적 자료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의 24.7%가, 사회복지시설의 32.3%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은 혜택을 받을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려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개념 정의나 실태 조사가 필요하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입 비용으로 지불하는 집단을 에너지 빈곤층으로 본다. 중위소득의 40%에 못 미치는 국민은 전국적으로 169만여가구(381만여명)인데 이들이 대부분 에너지 빈곤층인 것으로 추정된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과학대학원 교수는 "전력 발전량의 절대다수를 사용하는 도시가 발전소 송전소 고압선 등 에너지 개발로 인한 환경 부담은 농촌에 지우고 있다"며 "에너지 빈곤 문제의 도농 간 격차에 대해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창=김청환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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