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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러 간첩 11명 검거… 이 시점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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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러 간첩 11명 검거… 이 시점에 왜?

입력
2010.06.2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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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첩보물을 연상케하는 러시아 스파이들이 미국에서 발각됐다. 러시아 대외첩보부(SVR) 소속 비밀요원 11명이 십여년 동안 미국 내에서 다정한 이웃으로 위장해 암약하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적발된 것.

미 법무부는 28일 미국 서부 시애틀부터 동부 뉴욕까지 미 전역에서 불법적 정보활동을 한 혐의로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구속 기소하고 같은 혐의로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뉴욕타임스(NYT), AFP 등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법무부가 맨해튼 연방지법에 제출한 기소장에 따르면 러시아 스파이들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미국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 밀입국한 불법체류자였다. 그래서 법무부는 소장에 이 사건에 '불법체류자 프로그램'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들은 미국인이나 심지어 사망한 캐나다인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주변의 의심을 덜 받기 위해 부부나 연인으로 위장했다.

이들은 냉전시대 첩보전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암약했다. 활동자금은 미국에서 유엔 주재 러시아대표부 직원 등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여행을 위장, 남미의 한 국가까지 가서 자금과 지령을 수령했으며, 어떤 스파이는 뉴욕에서 다른 스파이가 2년 전 땅속에 묻어둔 돈다발을 파내 자금을 조달했다. 스파이간 연락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역 등에서 스쳐 지나가며 똑같은 가방을 서로 바꾸는 구식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모스크바로부터 지령을 받고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는 다양한 첨단기법이 활용됐다.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나 문장, 오디오 파일 등에 암호화된 내용을 넣는 '스테가노그라피'를 이용했고 해독을 위해 특별 소프트웨어도 갖고 있었다. 노트북컴퓨터에 개인무선망을 설치한 뒤 커피숍, 차량 등에서 정보를 주고 받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서신도 기본이었다. 스파이들은 미 권력층 내부, 특히 핵무기 관련 종사자와 정치인, 교수 등 고위 정보원을 확보하도록 명령 받았으며 암호명 'C'로 불리는 '모스크바 센터'는 포섭 대상을 '농부' '고양이' '앵무새'로 불렀다. "너와 '앵무새'의 관계는 매우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신이 적발되기도 했다.

검거 과정도 인상적이다. FBI 방첩부가 러시아 SVR소속 비밀요원들의 스파이 활동첩보를 입수한 것은 수년전이다. FBI 요원들은 이후 혐의자들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감시했다. 이들이 자주 들르는 음식점과 호텔 방에는 비디오 카메라도 설치했다. 남미까지 내려가 자금을 주고받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AFP는 "기소장에는 미 당국의 인지 시기가 2000년이었음을 암시하는 부분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 핵무기감축협정, 경제 협력관계 등을 통해 호전된 미러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체포 시점인 27일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방미 직후인 점도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 NYT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체포 시점을 크게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주장이 "근거가 없으며 부적절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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