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순간 스피드는 시속 30㎞에 이르고, 첨단기술의 결정체인 공인구 자블라니는 극대화된 탄성 때문에 방송 카메라조차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 22명의 선수들과 드넓은 축구장(가로 105m, 세로 68m)을 심판 3명의 눈만으로 감시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2010 남아공월드컵이 최악의 오심으로 얼룩지고 있다. 한 경기 승부는 물론이고 우승의 향방마저 바꿀만한 결정적인 오심이 속출하고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던 국제축구연맹(FIFA)도 다음 대회부터 부심 2명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축구계에선 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도입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피해자
28일 끝난 16강전 2경기 모두 치명적인 오심이 발생했다. 최고의 빅 매치로 관심을 모았던 독일-잉글랜드전 전반 38분 터진 프랭크 램퍼드(첼시)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맞고 독일 골라인 안쪽에 떨어진 명백한 골이었다. 그러나 우루과이 출신의 호르헤 라리온다(우루과이) 주심은 골로 인정하지 않고 경기를 진행시켰다.
이 슈팅이 득점으로 인정됐다면 스코어는 2-2 동점이 돼 승부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4-1로 크게 이긴 독일 대표팀의 요아힘 뢰프 감독도 "램퍼드의 슈팅은 분명한 골"이라고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독일과 잉글랜드의 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도 비슷한 오심 사건이 있었다. 당시엔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부근에 떨어졌으나 골로 인정됐고, 잉글랜드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와는 정반대 상황이 44년 만에 벌어진 것이다.
뒤이어 벌어진 아르헨티나-멕시코의 16강전의 첫 골도 명백한 오심이었다. 전반 26분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골문 쪽으로 띄웠을 때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시티)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으나 주심과 부심은 파울을 선언하지 않았다. 테베스의 머리에 맞은 공은 멕시코 골문으로 들어가 득점이 됐고, 7분 뒤 아르헨티나는 허탈해 하는 멕시코 선수들이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추가골을 터뜨려 승기를 잡았다.
한국-우루과이전에서도 오심 논란이 빠지지 않았다. 페널티지역 안에서 발생한 기성용의 핸드볼 반칙과 기성용이 상대 페널티지역 안에서 당한 파울 모두 심판의 눈으로부터 외면 당했다.
득점 과정에서 무려 2차례나 공을 팔로 건드리며 '신의 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브라질 루이스 파비아누(세비야)의 골, 미국 모리스 에두(레인저스)의 슬로베니아전 역전골 노골 판정, 상대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에 속아 브라질 카카(레알 마드리드)에 꺼내 든 레드카드 등 이번 대회의 오심 사례는 조별리그부터 줄을 이었다.
심판의 자질 문제? 대안은?
월드컵은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판들에게도 꿈의 무대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심판만이 월드컵무대에 설 수 있지만 대륙별 안배 원칙 때문에 함량 미달의 심판들이 종종 나타난다. 이번 대회 주심에는 유럽 10명, 남미 6명, 아시아와 북중미 각각 4명, 아프리카 3명, 오세아니아 2명 등이 배정됐다.
조별리그에선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선 심판들이 오심의 주역이었지만 수 차례 본선 경험이 있는 베테랑 심판들이 배정된 16강전에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문제가 된 독일-잉글랜드전은 우루과이 출신 주심과 부심이 경기를 주관했다.
32대의 카메라가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이고, 경기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비추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애매한 판정도 명백하게 오심 여부가 드러난다.
야구와 테니스 등에서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 도입을 놓고 찬반이 엇갈렸으나 결국 경기 운영에 활용되고 있고, 상당 부분의 오심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FIFA의 전향적인 발상 전환이 없다면 오심 논란은 월드컵의 재미를 반감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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