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개봉한 '축구의 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가 낳은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삶을 반추한다. 신기에 가까운 발 재간으로 세계의 그라운드를 평정했던 마라도나의 인간적인 풍모와 함께 그와 주변의 별스런 사연들이 이어진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 전에서 마라도나가 일으킨 '신의 손' 사건을 세례식에서 재연하는 마라도나교 신자들의 모습엔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를 지경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음식이 부족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종이 공을 던지며 놀았고, 테라스가 운동장이었다"는 마라도나의 말에선 유년시절의 곤궁함이 묻어난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 리버플레이트가 거액으로 유혹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사랑했던 구단 보카 주니어스를 프로 입문 팀으로 택한다. "돈은 적지만 (보카 주니어스 구장을 밟을 수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려서 두 가지 꿈이 있었다. 월드컵에 나가는 것과 우승컵을 받는 것"이라는 말에선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축구의 신이 축구화를 신은 궁극적인 목표가 돈이 아닌 자아실현이었음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24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는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이 한국인 감독의 지도아래 국제대회에 처음 참가해 첫 우승을 일구는 과정을 묘사한다. 언론 등에서 워낙 많이 되새김질된 실화임에도 감동의 진폭이 꽤 큰데 대사 하나는 특히 오래도록 귀에 박힐 듯하다. "가난하다고 꿈도 가난해야 하는가." 돈 한푼 없는 유소년 축구단이 맨주먹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는 모습에 놀라 만류하는 지인에게 한국인 감독이 매섭게 던지는 말이다.
몇 년 전 방문한 우간다의 어느 빈민촌에서 마주친 한 흑인 소년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축구 변방 극동의 한 나라에서 태어나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성공시대를 연 박지성 스토리는 아마도 그에게 큰 꿈을 그리게 했을 것이다. 장비라고 해봐야 공과 축구화 정도이고 그나마 맨발로도 할 수 있는 축구는 빈부격차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 스포츠이다. 그 어느 종목보다 다부진 꿈을 꾸는 불우 청소년이 많은 이유일 테다.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 때 방송 카메라와 눈조차 맞추지 못하는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다시 멋지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기만이라고 할지라도 축구는 꿈이니까, 또 축구는 희망이니까.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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