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24년(1493년) 왕명으로 편찬된 '악학궤범'은 조선 초기 궁중 공연예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음악이론부터 악기 편성과 배치와 연주법, 악곡과 가사, 춤과 거기 쓰이는 의상과 소품까지 빠짐없이 정리했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 병자호란 후 효종 때, 그 뒤 영조 연간에 복간됐다. 한국음악학 연구의 핵심 문헌일 뿐 아니라 무용사, 복식사, 국문학과 국어학 연구에도 긴요한 자료다. 음악학자 이혜구(1909~2010)가 1979년 처음 한글로 완역했고 이는 수정을 거쳐 2000년 으로 마무리됐다.
음악학자 송방송(68ㆍ사진)씨가 을 쓴 것은 이 중요한 문헌이 좀더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악학궤범에 나오는 모든 용어를 풀이하고 용례와 함께 가나다 순으로 정리한 사전이다. 용어마다 원전과 번역본 어디에 나오는지 일일이 밝혀 사전으로서 쓰임새를 높였다.
"'악학궤범'은 한국학 연구의 보물창고인데도 한국음악학계의 학문적 기초작업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이에요. 연구자들이 학문적 관심을 심화하는 데 제 사전이 다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책은 그가 필생의 과제로 삼은 (가제)을 쓰기 위한 중간 작업이다. 영남대 교수와 음대 학장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998년 정년퇴임한 후 그는 사전 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음악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사전을 쓰는 것과, '읽히는' 한국음악사를 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학하고 캐나다 맥길대 교수로 있다가 귀국한 1978년부터 뜻을 세웠다. 읽히는 한국음악사를 쓰겠다는 그의 꿈은 1984년 , 1997년 로 매듭을 지었다.
"사전을 만든다는 게 워낙 방대한 일이라서 일단 인명부터 정리하기로 했지요. 1차로 1900~45년 활동한 음악인을 정리해 지난해 말 을 냈고, 조선시대 편인 은 교정 중이고,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를 다룬 은 색인 작업 중입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있어서 편리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카드를 만들어서 분류하고 쓰느라 참 힘들었지요. 한여름 찜통 더위에도 카드 종이가 날아갈까 봐 선풍기도 못 틀고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곤 했는데."
사전은 '쓴다'고 하지 않고 '편찬한다'고 말한다. 혼자 하기엔 그만큼 벅찬 작업이지만, 그는 한국음악학의 학문적 기초작업으로서 긴 안목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서양음악 하는 사람들의 필수 문헌으로 이 있지요. 그게 처음엔 한 권이었는데 저자 생전에 3권까지 나왔고 그 뒤 5권, 10권으로 늘어나 지금은 20권이 넘지요. 제 사전도 한 번 만들면 10년, 20년 뒤 누군가 증보판을 내지 않겠습니까."
동맥경화로 쓰러진 적이 있는 그는 이 필생의 과제를 해내기 위해 매일 아침 집 근처 도봉산을 오르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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