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건설업계 '살생부'로 지목돼온 채권 은행단의 건설사 신용위험도 평가가 25일 발표되고 16개 건설사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업계에 떠도는 퇴출 공포는 가시지 않고 있다.
공포의 이유는 두 가지. 채권단이 옥석을 확실히 구별해 부실기업을 100% 골라냈는지 알 수가 없고, 지금은 건실해 보여도 경기가 악화하면 퇴출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B등급의 저주
실제로 지난해 평가에서 독자생존 가능(B등급)을 받은 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이후 경기악화로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성원건설과 신창건설, 현진 등이 부도를 맞아 법정관리 기업으로 전락했고,풍성주택도 최근 부도를 내고 올해 기업 신용위험도 평가에서 끝내 D등급을 받아 퇴출 위기를 맞았다.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 역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에 발목이 잡혀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전락했다. 남양건설과 금광기업 등 A등급으로 분류됐던 업체가 쓰러진 경우도 있다.
이들 업체가 무너진 것은 부동산 경기 불황이 올 들어서도 계속된데다, B등급 이상은 금융권에서 금리 수준이나 상환조건 등에서 C등급 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채권 금융단은 금융건전성 강화를 위해 B등급 이상 건설사에 대해서는 여신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채권 상환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동성이 넉넉하지 못한 B등급 회사라면 채무상환이 유예되는 C등급 회사와 비교해 나을 게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B등급으로 분류된 게 오히려 기업 생존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저주'였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도 "올해 C등급 판정을 받은 업체의 경우 기업 신인도에는 적잖게 흠이 갔지만, 비교적 고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만큼 채권단의 적절한 도움만 받으면 체질개선을 통한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환부 다 도려냈나
채권 금융기관은 '엄정히 평가했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2%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30여개 업체가 구조조정이나 퇴출 대상으로 거론됐는데, 실제 결과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계 추정과 금융단의 실제 평가에서 차이를 보인 회사 가운데 상당수는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자금압박을 견뎌 낼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단의 평가 발표 직후부터 '평가의 잣대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부실 평가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주요 평가기준 가운데 하나인 '비재무적 요소'의 개념이 확실치 않고, 같은 회사라도 은행별로 평가가 다르기도 했다"며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평가치고는 허술하게 이뤄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B등급 이상을 받았지만 여전히 경기 부침에 민감한 주택 위주의 사업 구조를 가진 업체들은 힘든 시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사업구조를 단기간에 쉽게 바꿀 수 없는 만큼, 건설업계 구조조정 리스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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