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소득층, 에너지 인프라 열악… "가스·전기료 고지서가 공포"
서울 은평구 응암동 74의 7 은평시장의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26.4㎡(약 8평)의 작은 방. 조동천(84) 문금섬(84)씨 부부와 학생인 손자 손녀 등 조손(祖孫) 네 식구의 보금자리다.
2월 이 집의 한 달 난방비는 60만여원나 됐다. 액화석유가스(LPG) 값으로 부담한 금액이 40만원이고 전기료는 20만원. 조씨 내외가 받는 최저생계비(80만여원)의 75%가 에너지 비용인 셈이다. 원래 상가여서 액화천연가스(LNG)가 공급되지 않는 이 건물에서는 이웃들이 함께 개인 업자가 판매하는 가스통을 구매한 뒤 고무호스를 이어 나눠 쓰고 있다.
여름이라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돈 아까워 선풍기는 거의 쓰지 않지만 노후 주택이라 외풍이 심해 밤에 전기매트 등을 켜다 보니 전기료가 높은 편이다.
문씨는 "생전 말 않던 손자 손녀가 '할머니,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에너지 유가연동제
이 집은 겨울에 몹시 춥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족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몰라서다. 그런데 정부는 도대체 저소득층에 대한 개념이 없다. 오히려 걱정만 더 안긴다. 최근 지식경제부는 3월 재시행하려다 보류된 LPG 등 가스 요금의 원가연동제를 올 하반기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에너지 절약 고강도 대책을 이달 말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전기 요금 현실화 방안도 안건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연동제가 시행되면 에너지 요금이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등락하게 되는데 최근 석유 값이 강세여서 에너지 빈곤층이 취사ㆍ난방용으로 많이 쓰는 LPG 가격도 7월 이후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조씨 집의 얇은 나무 문은 너덜너덜해져 여기저기서 바람이 들어온다. 창문과 섀시 역시 낡았고, 콘크리트와 섀시 사이의 틈을 타고도 외풍이 마구 들어온다. 열 손실이 많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을 불필요하게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겨울에 추운 집이 여름에도 무척 더운 것. 해만 뜨면 얇은 벽과 곳곳의 구멍은 열을 이동시키는 통로가 된다. 이 집의 유일한 혹서기 대책은 선풍기 한 대다. 가족이 올 여름 무더위를 피해 나갈 방법은 누진세가 적용되는 전기밖에 없다.
단열을 하면 복사열을 차단해 한여름은 더 시원하게 한겨울은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만 목돈이 없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너지재단이 최근 바깥 창문과 방 사이의 칸막이에 섀시를 새로 달아 줬지만 여전히 천장에서는 비가 새니 단열에는 별 도움도 안 된다.
상위계층의 에너지 부담 오히려 적어
같은 서울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에너지 부담 비용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단열재와 섀시 등의 건축이 잘 돼 있어 열효율이 높아 오히려 에너지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기의 생산, 운반, 소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서로 상호 작용함으로서 효율성을 높인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 스마트 그리드를 적용한 아파트들이 생겨나 이런 에너지 평등 격차를 더욱 벌려 놓고 있다.
가전제품도 차이가 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각종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품들은 에너지를 10% 정도 절약해 준다.
저소득층이 에너지를 더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체감 부담이다. 소득이 훨씬 낮기 때문에 감당이 쉽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 직접 피해
고유가는 저소득층에게는 심각한 재앙이다. 비싼 값으로 에너지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온난화도 마찬가지다. 냉방 에너지 수요를 늘려 고유가를 촉진한다. 특히 소득 수준이 낮은 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더욱 치명적이다. 저소득층은 대부분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경정의연구소가 지난해 9월 저소득층 밀집 지역인 은평구 거주자 7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0.3%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벽체 균열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심하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라는 응답은 39%에 그쳤으며, '양호하다'는 응답은 20.7%, '매우 양호하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주택 단열 상태 역시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2%)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단열 상태가 매우 나쁘다'거나 '나쁘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라는 응답은 14.7%, '좋음'이라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매우 좋음'이라는 응답은 나오지 않았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이 건강에 직접 위해를 당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할 저항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진상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거비를 포함한 수도ㆍ광열비가 가구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소득이 낮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체계적으로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감세하고, 저소득층이 많이 쓰는 등유 LPG 등에는 세금을 더 부과하는 정책을 지속하는 한 에너지 불평등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저소득층 전기사용액 일반가정보다 더 많다
겨울철 도시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액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의 열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원인이다.
환경정의연구소가 지난해 9월 서울 은평구와 마포구 주민 2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월 소득 규모가 150만원 미만인 집단의 겨울철 전기 사용액은 5만8,571원으로 150만원 이상인 집단에 비해 1만1,000원 가량 더 높았다. 211명의 평균 사용액은 5만4,414원이었다.
반면 여름철의 경우 저소득층의 에너지 사용액이 더 적었다. 소득 규모가 월 150만원 미만인 집단은 2만6,344원으로 150만원 이상인 집단에 비해 2만4,000여원 덜 소비했다. 평균치는 3만5,195원이었다.
이는 저소득층이 한여름 무더위를 대책 없이 나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거래소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최하위 소득 20%(월 소득 125만원 이하)층인 서울시 저소득 가구의 선풍기 보급율은 가구당 평균 1.1대로 시 평균인 1.9대보다 낮았고, 전국 평균인 1.8대에도 못 미쳤다. 에어컨 보급율도 0.1대로 시 평균인 0.6대나 전국 평균인 0.5대를 밑돌았다.
2008년 통계청 가구동향 조사(서울)에 따르면 일반적 에너지 빈곤 기준인 소득 대비 광열비 비중 10% 이상 가구의 비율은 10.3%에 이른다. 열 가구 가운데 한 가구가 에너지 빈곤층인 셈이다. 소득분위별로는 소득 최하위 10%층의 69.2%, 20%층의 27.5%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소득 최하위 10%층의 소득 대비 광열비 비율은 평균 34.3%로 소득의 3분의 1 가량을 광열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승철 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은 "정부가 저소득층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00만원 한도에서 신형 열 기구를 공급하는 제도가 있는데 액수가 적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며 "이 금액을 높이고 단열재나 섀시 설치도 지원하는 등 실질적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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