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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사(餓死)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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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사(餓死)의 탑

입력
2010.06.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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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사는 사탑(斜塔)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세계 10대 불가사의인 기울어진 탑을 보러 온다. 하지만 정작 피사에는 사탑보다 더 극적인 아사의 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사의 탑은 피사의 사탑에서 불과 몇 분 거리'기사의 광장'에 있다. 1603년 건축가 바자리가 탑을 옆 건물과 이어 붙여 변형시킨 탓에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아사의 탑 이야기는 12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사는 교황당의 우골리노 백작이 장악하고 있었다. 우골리노는 같은 교황당이면서도 자신과 대립하던 손자 니노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는 반대파인 황제당의 수령 루지에리와 손잡고 니노를 피사에서 추방한다.

니노를 추방하고 난 직후, 우골리노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눈치 챈 루지에리가 이번에는 우골리노를 체포하였다. 우골리노는 이적행위의 누명을 쓰고 아들 손자들과 함께 투옥된다.

이듬해 1289년 3월, 피사와 피렌체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 피사를 진압한 피렌체의 장군 구이도는 우골리노와 그의 일족이 갇힌 감옥 문에 못을 박은 뒤 열쇠를 아르노 강에 던졌다.

더 이상 감옥에 음식물은 공급되지 않았다. 마침내 자식들은 굶주림에 지쳐 하나 둘씩 죽어간다. 우골리노는 슬퍼하지만 자신도 굶주림을 이겨 낼 수 없었다. 죽음에 내몰린 우골리노는 기아 때문에 멀어버린 눈으로 더듬거리며 그 인육을 물어뜯는다. 며칠 뒤 우골리노는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 그 후 이 감옥은 아사의 탑이라 이름 붙여졌다.

스승과 지옥을 여행하던 단테는 지옥의 제 9곡에 있는 얼음 구덩이에서 반대파 수령 루지에리의 뒤통수를 물고 있는 우골리노를 발견한다. 단테가 물었다. "이렇게 짐승처럼 증오에 불타 상대를 물어뜯고 있는 사연을 말해 다오."

우골리노는 '무서운 그 음식의 머리털로 입을 닦고 나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아이들이 죽고 이틀 동안은 연신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로부터 고뇌에는 지지 않던 나도 배고픔에는 지고 말았다."우골리노의 고백은 인간의 악한 동물적 본성과 그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또는 그 굴레를 보여준다.

로댕의 에는 단테의 에 묘사된 수백 명의 죄인이 등장하지만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은 불과 몇 명에 불과하다. 그 몇 명의 인물 중 일단의 군상이 우골리노와 그의 자식들이다. 에 가장 걸맞은 주제이자 이 대작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 시립미술관 로댕전(展)에는 가 에서 따로 독립되어 군상으로 전시되고 있다.

로댕의 는 아름다움이나 고결한 가치, 숭고한 진리 대신 현실에 존재하는 악조차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던 낭만주의 화풍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고야 제리코 같은 낭만주의 화가들은 우골리노처럼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그림의 주제로 다루었던 것이다. 지성의 한계 또는 이성을 넘어선 파토스 세계를 그리고 있는 는 인간 본질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이다.

로댕전에 전시중인 많은 작품들이 극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돌과 청동의 시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문학적 테마와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 마다 숨겨진 스토리들을 찾아보는 것은 로댕의 조각들을 흥미롭게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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