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여름은 차라리 용광로였다. 보란 듯 이뤄낸 4강 신화에 전국이 들끓고 세계가 소스라쳤다. 4강 신화의 중심에는 박지성(29ㆍ맨유), 이영표(33ㆍ알 힐랄), 안정환(34ㆍ다롄 스더), 이운재(37ㆍ수원 삼성) 4인방이 있었다.
8년이 지난 현재. 그들의 월드컵은 끝났다. 더 이상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 부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보이지 않게 후배들의 어깨를 떠받쳤다. 그리고 얻은 사상 첫 원정 16강 쾌거. 4년 뒤를 기약할 수 없기에 8강 문턱에서의 좌절이 더욱 아쉽지만 미래의 간판들은 그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신화를 꿈꿀 수 있었다.
한국 축구 최고의 자랑 박지성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 끝난 뒤 "나의 월드컵은 끝났다"고 했다. 이미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리라고 밝혔던 박지성이다. 설사 박지성에게 네 번째 월드컵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핵심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제2의 박지성'이 나타나 박지성이 설 자리를 잃는 그림이 한국 축구에도 바람직하다.
2002년 두 개의 심장을 앞세워 히딩크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한 박지성은 2006년에 이어 남아공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중앙에 서든 측면에 서든 박지성은 제 몫을 해냈다. 월드컵 3회 연속 골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역시 8년 전 히딩크호에서 보석으로 거듭난 이영표도 남아공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하락세라는 평가를 비웃듯 붙박이 왼쪽 풀백으로 뛰며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전서는 영리한 동작으로 파울을 유도, 귀중한 프리킥 골을 한 차례씩 이끌어내기도 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사실상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짜디짠 땀을 아낌없이 쏟아냈다면 안정환과 이운재는 벤치에서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2002년 두 골, 2006년 한 골을 뽑아낸 '월드컵 해결사' 안정환은 훈련 기간 좀처럼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8년 전 거미손 별명을 얻으며 4강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던 이운재도 까마득한 후배 정성룡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경기 직후에야 그라운드로 나가 후배들을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이들의 모습은 격세지감을 실감케 했다.
한편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아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에 교체 출전한 이동국(31ㆍ전북 현대)도 이번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과의 인연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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