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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쟁, 잊지 못할 모습들] (5) 9만8000명을 살린 기적의 배, 흥남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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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쟁, 잊지 못할 모습들] (5) 9만8000명을 살린 기적의 배, 흥남철수작전

입력
2010.06.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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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같은 피란민 태우고 또 태우고… 남겨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어요. 무조건 배에 올라탔죠. 모두가 살았으니 이게 바로 기적 아니겠어요."

정정원(88ㆍ여)씨는 살을 에는 한겨울 함남 흥남부두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1950년 12월 16일 그는 피란 행렬에 뒤섞여 그곳으로 떠밀려 왔다. 등에 업힌 세 살배기 아들은 배고픔에 지친 듯 연신 흐느껴 울었다. 아들 때문에라도 꼭 살아야 했다. "보따리를 짊어진 피란민들이 어찌나 많던지, 떨어진 음식 주위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개미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죠."

사실 정씨는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피란을 떠났다. 함북 김책시에 살다 남편이 미군 군속으로 입대한 했는데 남편이 먼저 부대와 철수하면서 함남 함흥시를 거쳐 다시 흥남시까지 따라왔다. "여섯 살 딸은 같이 살던 시어머니에게 딸을 맡기고 왔어요. 이웃들도 모두 함흥시까지만 내려가면 다시 미군이 진격해 들어온다고 믿었죠. 잠깐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의 부대는 군함을 타고 먼저 흥남시에서 부산으로 철수했다. 이번에는 정씨의 차례였다. 하지만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미군들은 군함과 상선에 나눠 타 흥남시를 빠져나갔고, 해안에 늘어선 피란민들도 하나 둘 이들과 함께 탈출했다.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멀찍이서 바라만 봐야 했어요. 애를 안고 무작정 비집어 들어갈 수도 없고. 미 군함은 철수작전을 엄호하기 위해 산등성이 너머로 얼마나 포를 쏴 대던지. 언제 적이 함흥시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20일 흥남항을 방어하던 미군 3개 사단과 한국군 2개 사단이 모두 철수하고 미 육군 3사단만 남았다. 하지만 피란민은 족히 수만 명은 됐다. 미군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23일 메러디스빅토리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집채 만한 화물선이 해안으로 다가왔다. 주위에 여러 척의 상선도 함께 있었다. "꼬박 일주일 만에 배에 타라는 고함소리가 들리더군요. 미국인 승조원들도 급했던지 한국말로 '빨리 빨리'라고 외쳤어요. 여자와 노인, 아이들이 먼저 나무 널판지를 타고 배에 오르는데 마음 급한 청년들은 배에 달린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려다 바닷물에 빠지기도 했죠."

승조원들은 화물을 싣는 아래칸부터 사람들을 태웠다. 배가 다 차자 목판을 위에 덧대 공간을 만든 뒤 사람을 또 태웠다. 살얼음이 끼어 있는 갑판에는 남자들이 탔다. 행렬이 모두 줄어들 때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태우고 또 태웠다. "계속 배 안으로 피란민들을 채워 넣더라고요.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정도였죠. 일단 배에 탔으니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항해 중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다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죠. 그래도 이국의 낯선 피란민들에게 승조원들은 싫은 내색 없이 무척 친절하게 대했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배의 정원은 60명에 불과했지만 선원 48명에 피란민 1만4,000명이 몸을 실었다. 항구에 남겨 둔 피란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빅토리호가 흥남항을 떠난 마지막 배인 줄 그때는 몰랐어요. 만약 타지 못했더라면… 휴우."

힘차게 기적이 울리면서 배가 서서히 항구와 멀어졌다.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느닷없이 천둥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피란민을 싣느라 흥남항에 남겨둔 장비 탄약 보급품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폭파한 것이다.

배 안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선원들은 갖고 있던 빵을 조금씩 나눠줬지만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턱없이 부족했다. 마실 물도 없었다. "아들은 제 배 위에 엎드려 젖을 물고 오줌도 그냥 그 상태로 쌌어요. 다들 깜깜한 배 안에서 천장의 흔들리는 희미한 등불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수밖에요. 제발 적 함정과 마주치거나 기뢰와 충돌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어요."

사흘째 되던 12월 25일 배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정박한 배들로 가득 차 있어 다시 경남 거제도로 옮겼다. 배 안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이 5명의 아기가 새로 태어났다. "사람들은 생명의 기운이 전쟁의 참상을 이겨 냈다고 기뻐했어요. 승조원들은 '오 마이 갓'을 외치며 이들에게 김치1, 김치2…라고 애칭을 붙여 줬죠."

천주교 신자인 정씨는 60년 전 당시를 떠올리며 15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통일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북에 남겨둔 내 가족은 이미 잊었어요. 하지만 피와 살을 나눴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떨어져 산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60년 전 서로를 의지하며 기적의 배를 타고 살아남았던 것처럼 우린 모두 한 가족이니까요."

■ 흥남철수작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50년대 유명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첫 소절이다. 노래의 배경이 된 함남 흥남항은 1950년 12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의 땅이었다. 퇴각하는 미군을 따라 나선 9만8,000여명의 피란민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남녘으로 넘어왔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전투함 수송선 화물선 등 243척의 배가 오로지 피란민을 구하기 위해 동원됐다. 적진에서 펼쳐진, 가히 전쟁사에 기록될 만한 최대 규모의 피란민 구출 작전이었다.

50년 10월 중순 38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한 국군과 유엔군은 추수감사절(11월 23일)까지 전쟁을 끝내고자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서 총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중공군의 갑작스런 개입으로 계획은 틀어졌다. 함남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간신히 적의 진격을 늦추면서 흥남시로 후퇴했다. 이곳에 교두보를 확보한 미군은 해상으로 10만여명의 병력을 남쪽으로 철수시키면서 향후 중공군의 공세에 반격할 수 있는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문제는 피란민이었다. 미군 지휘부는 당초 피란민을 2만여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당연히 선박이 턱없이 부족했다. 적군이 언제 교두보를 뚫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피란민 가운데 첩자가 섞여 있다면 철수작전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군사적 편의보다는 인도주의를 택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정치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인사들을 구출하라"고 지시했고,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 사령관은 "가능한 많은 배를 보내 달라"고 미 해군과 유엔군에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흥남철수작전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흥남항을 마지막으로 떠난 배가 화물선 메러디스빅토리호다. 보급품 장비 군인들을 싣기 위해 흥남항에 도착됐다가 임무가 바뀌어 피란민 구출 작업에 투입됐다. 당시 빅토리호의 일등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씨는 2008년 방한해 "우리는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던 바로 그 일을 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미 해운청은 빅토리호의 성공적 구조 작업을 기려 위대한배로 지정했다. 또 이 배가 구조한 1만4,000명의 피란민 수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린 기록(2004년 기네스북 등재)으로 남아 있다.

■ 인터뷰- 국방부 뮤지컬 '생명의 항해' 주인공 주지훈 이병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춤과 노래로 잊혀진 전쟁의 아픔을 실감 나게 보여 줄 요량이다."

국방부가 흥남철수작전을 뮤지컬 '생명의 항해'로 제작해 올 8월 무대에 올린다. 함남 장진호의 대규모 전투, 함남 흥남부두의 이별과 항해,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운 메러디스빅토리호 등 다양한 스토리와 화려한 볼거리로 구성된 대작이다. 제작비 10억여원에 '명성황후'를 제작한 윤호진씨가 총감독을 맡았고 연예인 출신 장병과 일반 장병, 민간인 뮤지컬 배우 등 50여명이 출연한다.

주연을 맡은 주지훈(29ㆍ주영훈ㆍ사진) 이병은 "어릴 적에는 6ㆍ25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에게서 전쟁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까맣게 잊게 되더라"며 "군대에 와 보니 한국이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을 꺼냈다.

2월 입대해 특수전사령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인 그는 "만약 지금 전쟁이 터진다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며 "이념의 차이 때문에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 간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특히 뮤지컬의 소재인 흥남철수작전에 대해 "자유와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이처럼 절박하게 보여 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라며 "저의 몸짓과 목소리는 작지만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느꼈던 커다란 감격의 순간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은 24시간 내내 몸을 관리해 무대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처절한 작업"이라며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동료들 못지 않게 군인의 당당한 모습을 줄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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