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타결 이후 3년여간 한 걸음도 떼지 못했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1월까지 쟁점 해결, 내년 초 의회 비준안 제출'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양국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 하지만 우리로선 얻을 건 없고 잃을 것만 있는 불리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시간표 제시 의미는
오바마 대통령은 그 동안 누누이 한ㆍ미 FTA 진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번처럼 구체적 일정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한ㆍ미 FTA 추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바마 행정부로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미국 경제를 되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안고 있는 상황. 미국과 7번째로 큰 교역상대국인 한국과의 FTA 체결이 수출과 일자리를 늘리는데 더 없는 카드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더구나 한국과 중국의 FTA 추진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미국측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으로 해석된다.
쟁점 해소의 데드라인으로 11월을 제시한 것은 미국 중간선거를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다. 미국입장에선 국내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인화성 강한 재료인 만큼, 11월 중간선거가 끝난 뒤 건드리겠다는 것.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ㆍ미 FTA 문제가 미국 중간선거 이후 속도를 내리라던 당초 전망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중간선거(2일)와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11~12일) 참석 차 한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염두에 둔 시간표라는 것이다.
'새로운 논의' 성격과 내용은
관심은 오바마 대통령이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했다는 '새로운 논의'의 실체다. 이와 관련,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것이 재협상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한 부분을 실무적으로 '조정(adjustment)'하라고 지시한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기존 협상을 뒤엎는 재협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 온만큼, '새로운 논의'는 기존 협정문을 그대로 둔 채 일부를 보완하는 추가 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새로운 논의가 재협상이든 추가 협상이든 우리로선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최대 쟁점인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에서 우리는 수세적인 입장이다. 미국 민주당과 자동차 업계는 양국간 자동차 통상의 불균형 문제를 지적해왔고, 미 의회는 지난 달 한국 등 쇠고기 수입국에게 모든 연령의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결의문까지 채택한 상태다.
향후 전망은
정부 고위 당국자는"아직 미국측에서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양국 간에 어느 정도 교감은 있었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 오바마 대통령이 시한으로 언급한 11월까지 불과 4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사전 조율 없이 공개적으로 시한까지 못박아 발표하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분석이다.
물론 비준안이 의회에 제출된다고 통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미 하원에서 한ㆍ미 FTA를 다루는 세입위원회 샌더 레빈 위원장이 미국 자동차산업 메카인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주 출신이고, 상원에서 한ㆍ미 FTA를 다루는 재무위원회의 맥스 보커스 위원장은 대표적인 쇠고기 생산지인 몬테나주 출신이다.
다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한ㆍ미 FTA를 적극 지지하는 공화당의 약진이 예상되는 데다, 자동차와 쇠고기 등 주요 쟁점에 대한 보완이 이뤄진다면 의회에서 비준안 통과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상황도 중요한 변수다. 실무협상이 본격화할 경우 국내 여론의 반발이 다시 거세질 수 있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협정분야에 대한 추가 협상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