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원색과 단순한 이미지로 일상의 풍경을 따뜻하게 품어온 중견 화가 황주리(53)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꽃보다 사람'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상의 모든 것이 캔버스라 생각한다"는 황씨의 말이 실감난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등학생용 나무의자 22개 위에 어깨동무를 한 친구들, 우산을 쓴 연인, 아기를 업은 어머니 등의 모습이 살포시 올려졌다. 황씨가 세계를 여행하며 하나 둘 모은 의자들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스스로를 '수집가'라고 표현했다. 다섯 살 때부터 우표를 모았고, 이후 안경 돌 엽서 등을 수집해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모은 안경이 1,000개 정도가 돼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고 그저 제 주변에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였어요."
황씨가 요즘 수집하는 것은 사진이다. "안경, 돌, 의자와 달리 사진은 만져지지 않는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이기에 훨씬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캔버스에 전사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설명처럼 "사진과 회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들이다.
완도군 청산도의 골목길, 시골 초등학교의 수도꼭지, 모스크바 어린이놀이터의 목마, 에스토니아의 담벼락 등 그가 카메라로 '수집'한 이미지들이 그대로 그림의 배경이 됐다. 황씨는 그 위에다 버스정류장에서 입맞추는 남녀, 전봇대에 기대 담배 피우는 여자, 술 마시는 남자, 놀이터 벤치에 외롭게 앉은 여자 등 삶의 단편들을 풀어놓았다.
'식물학' 연작은 해바라기, 선인장 등 꽃을 프레임 삼아 사람들을 담아냈다. 예전 작업보다 한결 색이 밝아졌다. 황씨는 "내 그림에서 꽃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며 "꽃을 그리지만 휴머니즘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에게는 '꽃보다 사람'"이라고 말했다. 7월 11일까지. (02)519-080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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