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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의사와 과학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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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의사와 과학자 사이

입력
2010.06.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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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의사에게 무작정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로는 다 같은 'doctor'이니 굳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일반 사람들이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박사학위도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박사 학위도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에는 연구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도 의학 박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생겼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제는 의과대학 내에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면서 이공계 대학들은 대학 재학 기간을 의전, 치전 대비 수험 기간으로 설정한 대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약 70% 정도의 학생들이 수험생 생활을 하고 있어 대학 강의실은 과도한 학점 경쟁, 의ㆍ치전을 선택하지 않은 과학도들을 너무 순진한 사람으로 비하하는 분위기 등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청년들이 졸업 후를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하여 대학생이 갖춰야 할 도전 정신과 사회 개혁 의지가 쇠퇴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큰 손실임은 물론이다.

의사는 중요한 직종이고 직업의 안정성 또한 좋으니 의치학 전문대학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무작정 탓할 의사는 없다. 자발적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직업적 안정성만을 추구하고 소심해져 버린 청년 문화,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자녀를 억지로 의치대에 밀어 넣고야 마는 부모들이 당당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초 학문을 하는 사람, 모험심이 뛰어나 새로운 업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미국과 같은 이민국은 필요한 인력을 이민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pre-med를 운영하느라 이공계가 타격을 입는 정도가 약하지만 우리 경우는 다르다.

의치학 전문대학원들이 요구하는 서류와 추천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학교 성적만이 아니라 연구 경험이 있는지 확인서를 요하기도 한다. 너무 길고 자세한 사항까지 기술하게 되어 있어 교수가 쓸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과연 이걸 작성하는 사람의 입장에서(그것도 한 명도 아닌 다수의 학생들 것을 써야 하는)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만든 서류일까 의심이 든다. 이토록 주관적인 서류들이 입시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교수들이 학부 학생들에게 연구 체험의 기회를 갖도록 권장하는 것은 사실 순진하게도 "과학의 흥미를 경험하면 반드시 과학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든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교수로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신성한'기회를 의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스펙 쌓기에 이용하느라 정말로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할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면 큰 일이다.

의사와 과학자는 서로 많이 다르다. 내가 아는 많은 의사들은 절대로 과학자로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거꾸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는 자유롭고 권위의식이 약한 반면 생명을 다뤄야 하는 의사들 사회는 위계질서가 강하고 개인 의견보다 집단의 의사 결정이 존중된다.

전문대학원들이 기초학문을 하는 교수들과 연구실에 부담을 줄 정도로 실효성도 없는 과한 서류들을 요구하는 일은 중단하고, 좋은 의사를 뽑기 위한 다른 대안들을 마련하기 바란다. 기초학문이 흥해야 나라의 미래가 밝다. 인생을 걸고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도들의 기를 꺾는 일이 없도록 사회 전반이 이공계 학생들에 대해 적절한 예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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