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케 스히퍼 지음ㆍ한창호 옮김/북스코프 발행ㆍ552쪽ㆍ3만8,000원
'아내에게 아침밥 챙겨 달라는 30대 남자, 아내에게 혼나면서 눈 치켜 뜨는 40대 남자, 아내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 50대 남자, 그 나이 되도록 살아서 아내에게 수발 들게 하는 80대 남자'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른바 '간 큰 남자' 시리즈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혹은 우월한 권력을 갖게 된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우스갯소리다. 부부 간의 권력 다툼에서 힘을 잃어갈 뿐 아니라 여성들이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면서 요즘 남성들은 "여성들 무서워서 못 살겠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여성 작가 미네케 스히퍼(72)의 은 속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여성에 대한 편견을 부추키고 강화함으로써 그들을 지배하고자 했던 남성 중심의 인류사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스히퍼는 미국 프랑스 중국 같은 나라들은 물론 에콰도르, 에티오피아의 작은 부족들에서 전해 오는 여성 관련 속담 1만5,735개를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이 속담들이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여성은 경제적ㆍ성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메시지다.
저자는 방대한 분량의 속담을 여성의 출생, 외모, 사랑과 성, 임신과 출산 등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남성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남성의 우월감을 높이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을 판단하는 속담은 극히 드물다.
가장 보편적인 속담은 딸의 출생을 깎아내리는 것들이다. "밤새 애썼는데, 기껏 딸이라니"처럼 냉소적인 스페인 속담부터 "여자 아이가 태어나거든 내버려두라. 선인장처럼 자랄 테니까"(인도), "절름발이 아들 하나가 귀중한 딸 열여덟보다 낫다"(중국), "딸이 태어나면 문지방이 40일까지 운다"(아랍) 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속담은 문명권을 가리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다. 능력있는 여성을 사갈시하고,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만 강조하는 속담도 부지기수다. "남자는 손으로 알아보고 여자는 미모로 알아본다"(러시아), "두뇌는 남자의 보석이고, 보석은 여자의 두뇌다"(유대인), "여자 생각이란 코 끝까지밖에 못미친다."(일본) 등이 그런 류다.
요즘 여성이 읽는다면 몇 장 채 넘기지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정도로 속담들은 남성중심적 사고를 깔고 있다. 그 완고한 사고는 역설적으로 남성 자신의 열등감과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흥미롭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생생한 사례와 흥미로운 서술 때문에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속담을 통해 여성이 처한 현실과 남성의 여성관, 여성의 남성관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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