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발생한 대구 여대생 이모(26ㆍ대구 수성구 범물동)씨 납치 살해 사건(한국일보 25일자 16면)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미숙한 대응으로 추적 사실을 들키는 등 곳곳에서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23일 오후 7시22분께 대구 달서구 호림동 모다아울렛 앞 네거리에서 용의 차량인 모닝승용차가 1차로의 차량 사이를 비집고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으로 달아났다"며 추적 실패를 시인했다.
더 큰 문제는 비공개수사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도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 주요 도로에서 검문검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의자 김모(25)씨는 같은 날 오후 10시께 경남 거창군 88고속도로 거창톨게이트 부근에서 이씨를 목졸라 숨지게 하고 고속도로변 배수로에 버렸다.
특히 앞서 경찰은 김씨가 이용하던 이씨 계좌를 부정계좌로 등록, 결과적으로 용의자에게 경찰 추적 사실을 알리고 말았다. 김씨는 23일 오후 6시34분께 이씨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 이씨의 목소리를 들려 준 뒤 "왜 경찰에 신고했느냐"며 끊었고 이후 경찰 추적을 따돌리고 이씨를 살해했다.
유족들은 "범인에게 돈을 입금하려 했으나 경찰 요구에 따라 지급정지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살았을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부정계좌로 등록하면 인출 시도 사실을 즉시 알 수 있어 납치ㆍ유괴 사건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수사 기법"이라고 해명했다.
이뿐 아니라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용의 차량이 흰색 모닝승용차임을 확인하고 23일 오후 경찰 관계자 700여명에게 인상착의 등을 알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일반인들에게도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많은 빚에 시달리던 김씨는 23일 오전 1~3시께 수성구 도로변에 앉아 있던 이씨를 자신의 승용차로 납치한 뒤 테이프 등으로 손발을 묶어 다니며 6,000만원을 요구하다 경찰이 추적하자 살해했다. 납치 당일 오전 7시46분께 이씨 전화를 이용해 금품을 요구한 김씨는 가족이 입금한 290만원 중 255만원을 인출했고 나머지는 지급정지로 다 빼내지 못했다. 경찰은 김씨를 추적한 끝에 24일 오후 8시께 대구 달서구 용산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붙잡았다. 경찰은 25일 김씨에 대해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범행 당일 납치 대상을 물색하던 중 밤 늦게 산책을 나왔다 도로변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이씨를 발견, "함께 바람이나 쐬자"며 접근했다. 이씨가 경계하며 동행을 거부하자 주민등록증을 내보이며 "나쁜 사람이 아니다"고 안심시켰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김씨가 고교 시절 만난 적이 있었던 사람임을 알고 별 의심 없이 탔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고 경찰은 밝혔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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