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아몬드 지음ㆍ최파일 옮김/미지북스 발행ㆍ468쪽ㆍ1만6,000원
유럽 등 기독교권과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권의 역사적 관계를 적대적인 두 문명의 충돌로 보는 것이 요즘의 통념이다. 9ㆍ11 테러 이후 더욱 심화된 이런 시각에 대해 이 책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 이언 아몬드의 은 과거 800년 동안 유럽을 무대로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에 맺어진 다섯 시기의 군사동맹을 상세히 기술한다. 11세기 이베리아 반도, 13세기 이탈리아, 14세기 그리스, 16세기 헝가리, 19세기 러시아 크림반도의 전장에서 이뤄진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동맹이다.
무슬림의 칼리프 지배 체제가 붕괴된 11세기 이베리아 반도는 남부에 20여 개의 이슬람 군소 국가, 북부에 여러 개의 기독교 왕국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기독교 왕국인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는 사라고사, 세비야 같은 이슬람 동맹국들을 도와 같은 기독교왕국인 카탈루냐와 대립했다. 무슬림과 기독교도 간의 이 같은 동맹은 당시 아주 흔한 일이었다.
13세기 이탈리아와 독일을 아우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에 맞서 로마 바티칸에서 사흘 거리에 있는 루체라에 시칠리아 출신 무슬림 병사들로 구성된 군사도시를 건설했다. 기독교 땅에 둥지를 튼 작은 이슬람 요새였다. 교황의 군대에도 아랍 병사들이 있었다.
14세기 비잔티움 황제 칸타쿠제노스는 아이딘 투르크의 술탄 우무르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고, 16세기 유럽의 심장부를 노리던 오스만 제국의 헝가리 지배는 발칸반도의 기독교도를 통해 이뤄졌다.
아몬드 교수가 제시하는 이 같은 군사동맹 사례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유럽과 지중해권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도식적 사고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저자는 이 동맹들이 현실정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양측 엘리트들간의 진정한 우정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무슬림이 다른 문명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유럽문명의 본질에 속한다는 점을 밝히고 '문명화된 기독교 유럽'이라는 환상을 해체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큼 논거가 강하지는 않다. 다만 유럽 기독교권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기존 시각을 교정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