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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인간의 아픈곳 찌르는 참 뻔뻔한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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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인간의 아픈곳 찌르는 참 뻔뻔한 걸작

입력
2010.06.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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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보파 지음ㆍ이승수 옮김/민음사 발행ㆍ176쪽ㆍ8,000원

'연쇄살인마 전갈' '동성애자 달팽이' '수도승 경찰견' '이중간첩 개미' '자수성가 부자 쇠똥구리' ….

에 등장하는 요절복통의 동물 주인공들이다. 20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우화소설집은 단 몇 페이지만 읽어도 눈이 번쩍 뜨인다. 너무 웃기고 짜릿해서. 동물을 인간 세계에 빗대는 우화가 대체로 전형적인 캐릭터, 빤히 보이는 풍자, 고루한 교훈으로 흐르기 쉽지만,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 알레산드로 보파(55)는 동물들의 특성에다 인간 삶의 희비극적 면모를 기막히게 버무렸다. '코믹 문학의 전당에 오를 만한 뻔뻔한 걸작'이라는 평가가 과찬이 아니다.

예컨대 쇠똥구리에서 저자는 부와 권력을 좇는 인간의 탐욕을 읽어낸다. 수천 마리의 쇠똥구리가 똥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드는, '몸과 똥이 뒤범벅되는 생지옥'에서 아버지가 짓밟혀 죽는 모습을 본 아들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가치는 생존"이라며 이를 간다. 온갖 패악질로 엄청난 똥을 축적한 그는 아름다운 딱정벌레 암컷을 만나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지만, 암컷은 "너처럼 똥 속에서 목욕하는 덩치 큰 풍뎅이를 본 적이 없다"고 일갈하고 떠난다. 어머나! 쇠똥구리가 아니라 풍뎅이였다니. 하지만 그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버리고 연인을 뒤쫓기에는 자신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을 깨닫는다.

뻐꾸기와 되새를 다룬 에피소드는 사랑과 배신에 대한 풍자극이다.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경계해 갓 결혼한 되새 남편은 며칠씩 밤을 새며 둥지를 지킨다. 새끼들이 안전하게 부화해 안심하던 찰나, 침대에 뻐꾸기 수컷이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사랑했던 부인도 '뻐꾹', 새끼들도 '뻐꾹' 하며 그에게 인사한다. 가정을 지키려던 그 모든 노력이 기만당한 순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되새는 저도 모르게 '뻐꾹' 하며 인사한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동물 주인공들은 모두 수컷으로 '비스코비츠'로 불린다. 비스코비츠가 사랑하는 동물로 항상 등장하는 암컷의 이름은 '리우바'. 에피소드의 상당수는 비스코비츠가 리우바에게 속거나 희생당한다는 내용인데, 현대 사회의 경쟁에 치이고 가정에서 버림받고 여성들에게 농락당하기 일쑤인 남성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에 '킥킥' 웃으며 공감할 독자들도 30~40대 남성일 것 같다.

이탈리아 작가인 알레산드로 보파는 동물유전연구소 연구원 출신. 연구소 일에 염증을 느끼고 태국으로 떠나 소일하다 그곳에서 1998년 이 소설을 완성했다. 이 한 편의 소설로 무명 작가였던 그는 이탈리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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