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바커바르트 지음ㆍ민병일 옮김/중앙북스 발행ㆍ244쪽ㆍ1만9,800원
독일 사진작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60)는 붉은 소파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한다. 그리고 그 소파를 사람들의 삶 속으로 살짝 밀어넣는다. 사람들을 소파에 앉히고 인생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벌써 30년째다. 2만5,000명이 그의 소파에 앉았다.
이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79년 뉴욕의 소호. 바커바르트는 조각가 친구가 버리려던 낡은 소파를 백화점 앞으로 옮긴 뒤 거기에 앉은 행인들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순전히 장난이었지만 작업 과정에서 붉은 소파가 세상을 이해하는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나갔다.
는 그가 30년 간 이어온 이 작업의 결과물을 담은 책이다. 전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이 붉은 소파에 앉은 모습과 그들과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대통령, 정치인, 예술가, 슈퍼마켓 점원, 농부, 거지 등 천차만별의 배경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무거운 소파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 이유는 모든 이들의 독특한 존재성과 완전한 평등을 드러내기 위해서다"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과 질문은 똑같다.
침팬지 인형과 함께 포즈를 취한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야생 어미 침팬지와 새끼가 처음으로 나의 접촉을 허락했을 때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고 답했고, 쓰레기 처리장 가운데 앉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인간이 마침내 그들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의 빙하에서 만난 스무살의 여행 가이드 클라라 시구르다도티르는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우리 영혼은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폐허가 된 공사장에 앉은 루마니아의 부랑아 디미트루 부르라쿠는 "지옥에나 떨어지겠죠"라고 냉소한다.
캘리포니아 대저택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플레이보이 발행인 휴 헤프너, 매킨토시컴퓨터에 기댄 채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있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 등의 인생이 붉은 소파라는 작은 배경에서 또렷하게 요약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린 붉은 소파에 앉아있는 바커바르트 자신의 모습이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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