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책을 넘길 때 손가락으로 종이 한 끝을 문지르면 미세하게 가열될 것이다. 이 가열 때문에 종이 속 전자의 갑작스런 움직임이 일어나 원자를 이탈, 다른 미세입자와 충돌한다. 그런데 이 입자는 상대적 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고 충돌은 격변일 수 있다. 이 충돌로 극미의 세계에 생명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인간세계 역시 엄청난 존재의 사소한 움직임에서 생겨났을 수 있다. 한 사람의 무의미한 행동이 어딘가에서 한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황당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상상력이다.
■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 스탠리 매크리스털이 설화(舌禍)로 결국 옷을 벗었다. 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을 비판한 게 문제가 됐다. 흥미로운 건 이 사건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과 연계시킨 발상이다. 원래 예정된 취재기간은 단 이틀이었고, 당시 매크리스털은 파리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유럽항로가 막혀 매크리스털의 아프간 귀대가 늦어지면서 2주 동안 취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정을 넘긴 긴 인터뷰로 인해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다가 쓸데없는 얘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 이 착안은 "미국의 확고한 문민통제 시스템을 보여준 것"이라는 식의 상투적 찬사보다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한국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의 확전 금지 정책에 항명, 해임된 사례와 비견하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체제에서건 국가 체제상 직속상관에 대한 항명ㆍ비판은 당연한 해임사유다. 공개적으로 "대통령은 불편하고, 부통령은 근시안적"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게 콩가루 집안일 것이다. 심지어 더 나아가 이런 하극상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자괴하는 어처구니없는 분석도 있다.
■ 핵심은 세상 일의 불가측성(不可測性)이다. 요즘은 뭘 생각하건 월드컵과 연관이 된다. 대회 전부터 공인구 자블라니의 탄성, 비행궤적 등의 불가측성이 화제가 됐다. 그 때문인지 이번엔 유난히 이변이 잦다. 전통의 여러 축구강국들이 도처에서 헤매면서 망신을 당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우리 대표팀이 세계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16강에 오른 것도 사실 이변이다. 예측은 틀리기 위해 존재하고, 그 불가측성 때문에 세상과 삶이 더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 또 한번 세계인의 예측을 깨는 우리 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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