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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창조경영'이 안 되는 이유

입력
2010.06.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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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공동설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공통점이 많다. 서른일곱 살 동갑내기로 몬테소리 초등학교를 나왔다. 교사가 수업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교구를 다루면서 학습을 이끌어나가는 게 몬테소리 교육의 특징이다. 두 사람은 여기에서 원하는 것을 공부할 자유를 마음껏 누렸고, 공립 고교를 거쳐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기존 질서와 권위를 거부하고 모든 것에 의문을 던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공통점이다. '창조적 인간'의 전형인 셈이다. 이들이 특유의 면접시험을 통해 뽑는 임직원도 늘 반역을 꿈꾸는 괴짜이긴 마찬가지다. 브린이 계약담당 변호사를 뽑을 때 제시한 문제는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파는 것'을 주제로 30분 안에 계약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대학캠퍼스처럼 꾸며진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는 '남들이 생각해보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구글러(Googler)들의 연구 열기로 24시간 활기가 넘친다.

IT혁명의 원천은 '창의성'

창조는 기존 틀과 통념을 무너뜨리는 일종의 파괴 행위다. 그런 만큼 보통 사람들이 창조적 사고를 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뇌과학자 그레고리 번스는 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우선 인간의 뇌는 익숙한 걸 좋아하고 낯선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 아이디어가 조롱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레 두려움을 느낀다. 성공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현실화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브린과 페이지는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늘 새롭고 낯선 것을 추구한 시대의 반항아였다.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창의적 혁신을 일궈낸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정보통신(IT)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상식파괴자다. 애플이 전통적인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창의적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우리 IT산업은 그간 제품의 질과 가격 등 하드웨어 경쟁력을 토대로 성장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무장한 아이폰이 IT경쟁력의 기준을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디지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 핵심은 '창의성'이다. 삼성이 2006년부터 창조경영을 부르짖는 등 국내 기업들도 '창의'와 '혁신'을 경영모토 삼아 복장 및 출퇴근 자율화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창조경영을 하려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독서와 토론,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과정에서 나온다. 문제는 우리 교육시스템이 이런 인재들을 길러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분리하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목표로 점수경쟁에만 매달리는 풍토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오기는 어렵다.

스티브 잡스가 진보적 인문학의 전통이 강한 리즈 대학을 중퇴했다는 사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우리 교육제도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예술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융ㆍ복합형 인재를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상명하달식 기업문화 바꿔야

기업문화도 바꿔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창의적이면서도 조직과 잘 융화하는 성실한 인재를 선호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결속력, 경영진의 상명하달식 관리와 독려가 중시되는 문화 탓이다. 그러나 창의적 인재들은 대체로 고집불통이고 기인이다. 스스로 '별종'이라 여겼던 브린은 어른이 돼서도 떼쓰는 십대 아이같이 짓궂은 장난을 즐겼고, 수도승처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페이지는 토론 때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기벽으로 유명하다. 잡스 또한 변덕스럽고 공격적이며 까다로운 성격이다.

국내 IT 대기업의 CEO들은 하드웨어 전문가 일색이다. 구글과 같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작업환경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 인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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