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이다. 두께 12㎝를 넘지 않는 골대를 잘도 맞힌다. 맞고 튕겨나가기도 하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하면 동료에게 연결되는 기막힌 패스가 되기도 한다. 골대 불운(또는 행운)은 그래서 신의 짓궂은 개입이요, 운명의 장난이다.
길이 7.32m의 크로스바와 2.44m의 양 포스트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자블라니와 30차례나 충돌했다. 40경기를 소화한 24일 오전(한국시간)까지 전체의 절반인 20경기에서 골대를 맞는 슛이 나왔다. 경기장 별로는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과 로프투스 페르스펠트 스타디움에서 나란히 4차례씩 골대 불운 경기가 나와 최다를 기록 중이다.
골대 징크스는 옛말?
'골대를 맞히는 팀은 이기기 어렵다.' 축구계의 오랜 속설이다. 회심의 슛이 골대를 맞고 불발에 그치면 힘이 빠지게 마련. 그러나 이번 대회는 다르다. 골대 불운을 겪고도 마지막에는 웃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렌)은 13일 세르비아전서 오른쪽 포스트만 두 번 맞혔다. 그래도 가나는 1-0으로 이겼다. 독일의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도 14일 호주전서 왼쪽 포스트를 맞혔지만 독일은 4-0으로 완승했다. 네덜란드 역시 14일 덴마크전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 밀란)의 크로스바 불운을 이겨내고 2-0으로 이겼다.
골대의 저주, 최대 희생양은 카메룬
'불굴의 사자' 카메룬은 잔인한 골대의 저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32개 나라 중 가장 먼저 16강 탈락이 확정되는 수모를 떠안았다.
14일 일본전. 카메룬의 우세가 예상됐지만 0-1로 덜미를 잡혔다. 사뮈엘 에토오(인터 밀란)의 슛은 왼쪽 포스트를 강타했고, 후반 막판 스테판 음비아(마르세유)의 중거리슛은 크로스바 왼쪽 모서리를 때렸다.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메룬은 20일 덴마크전(1-2 패배)서도 왼쪽 포스트와 크로스바를 한 차례씩 때려 땅을 쳤다. 특히 간판 골잡이 에토오는 일본전과 덴마크전서 두 차례나 왼쪽 포스트에 골을 도둑맞고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스타 대우? 골대 앞에서는 어림없지
'판타스틱 3'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기대보다는 몸이 덜 풀린 모습이다. 소속팀에서 펄펄 날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번 대회에서의 활약상은 아직까지 조용한 수준이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골대 불운도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 중 하나다. 메시는 17일 한국전과 23일 그리스전서 한 차례씩 왼쪽 포스트를 맞혔다. 한국전서는 골대를 맞은 공이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앞으로 배달돼 골로 이어졌지만 그리스전서는 대포알 슛이 골망 대신 골대를 흔들었다.
호날두 역시 15일 코트디부아르전서 벼락같은 중거리슛이 왼쪽 포스트를 때렸고 21일 북한전서는 먼 거리에서 때린 슛이 크로스바 오른쪽 모서리를 강타했다. 루니는 23일 슬로베니아전서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잡았으나 오른발로 가볍게 찬 슛이 왼쪽 포스트에 가로막히는 불운과 마주했다. 호날두만이 한 골을 기록 중일 뿐 메시와 루니는 아직까지 골 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양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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